한 직종에 20대 전부를 던졌다. 그리고 한 달 전, 그곳을 떠났다.

클리앙의 한 이용자가 남긴 글이 요즘 화제인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개인의 사연이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 20대의 불안감 그 자체'를 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학을 중퇴한 후, 20대 내내 단 하나의 직종만 해왔다는 그는 최근 퇴사 결정을 내렸다. 퇴사한 지 정확히 한 달째.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과 잡생각의 늪이 밀려온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책과 세상의 조언들인 것으로 보인다. 자기계발서는 고개를 들라고 외친다. 소셜 미디어에선 누군가는 이미 다음 도전을 시작했다고 은근히 재촉한다. 하지만 그 말들이 그에게는 오직 짓누르는 무게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도전해라, 실행해라 — 이런 외침 속에서 정작 마주친 건 훨씬 근본적인 물음인 것으로 보인다. 내가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한 일만 해왔으니, 그 일 말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가늠되지 않는 것. 이게 단순한 번아웃일까, 아니면 정체성 공백인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세대 간의 고난을 비교하고 싶었다는 말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어머니에게 과거를 물었다. 화생방 훈련은 면했지만 최루탄의 고통이 있었고, 그보다 앞선 세대의 노고는 여전히 크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이 글의 빈틈인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가 기성세대의 남자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지금 이 나이에 직위가 높아진 형님들, 너희 20대 중반 후반은 정확히 무엇이 고난이었는가. 단 한 가지만 알고 싶다고.

세대마다 고난의 형태가 정말로 다르다. 어머니 세대는 거대한 사회 변동 속에서 생존 자체를 증명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정이나 성장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대의 물결에 타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어떤가. 기본적인 생존과 성장은 어느 정도 보장받았으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을 무조건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세대다. 도전, 혁신, 경력의 다양성, 변화에 민첩한 대응 — 이 모든 게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지친다.

그렇다면 쉬는 것도 회복일 수 있다. 퇴사 한 달 차, 지금 이 공백이 반드시 메워야 할 구멍은 아닐 수도 있다. 한 일만 해온 사람이 갑자기 그 일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침묵, 정체성을 잃었을 때의 움직임 없는 시간 — 이것도 일종의 '재구성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 시대는 자꾸만 바쁠 것을 강요하지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며칠, 구체적인 계획 없이 흘러가는 주말, 단순히 누워 있는 오후 같은 것들이 오히려 번아웃 회복의 첫 걸음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해도 된다.

재시작의 속도는 누가 정하는 게 아니다. 남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이는 이틀 만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이는 한 달을 깊은 휴식에 빠져도 괜찮다. 문제는 둘 다 '옳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 분위기에 있다. 누군가는 계속 묻는다. 이제 뭐 할 거냐고. 빨리 결정하라고.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그런 채근이 아니라, '쉬어도 괜찮아'라는 한 마디의 허락일지도 모른다.


📌 원문 발췌

20대 내내 쭉 근속했습니다 퇴사한지 한 달 차인데 잡생각만 가득하고... 도전해라 실행해라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는데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