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창문은 보통 풍경을 담는 틀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창문은 그보다 훨씬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네이트판의 한 익명 게시글에서 나눈 사연이 그렇다.
글쓴이는 24살 때 일어난 일을 꺼냈다. 다니던 직장에서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회사는 15층 건물에 위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높이에서 반복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래를 바라볼 때마다 떠올랐던 극단적인 상상. '이렇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의도하지 않게, 반복적으로 찾아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루 중 몇 번씩이었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그 생각으로 빠져나갔다.
이것만 아니었다. 밤이 되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자다가 갑자기 경기 증상으로 깨어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극단적 생각이 밤에도 신체로 전달되는 형태였다. 심리적 압박이 신체 증상으로 변환되는, 통합된 위기 상태였다.
그때 자신을 원망했을 글쓴이. 그 시간을 견떠내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탓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다르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시간을 견딘 자신을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상상과 신체 증상이 함께 몰려올 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날을 넘긴 것. 그것이 지금은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살아남은 것 자체에 대한 감사였다.
4년이 그렇게 흘렀다. 지금 나이는 28살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의 재직 경험은 그 2달 반이 전부다. 그 후로 공백의 시간이 이어졌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기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마주하려 노력했고, 약물 치료도 병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회복의 진행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여전히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멀다고 느껴진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바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나가려고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뛴다. 짧은 기간의 일자리 면접도 신체가 반응한다. 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직 환경에 진입하는 상황이 여전히 두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4년 전의 경험이 얼마나 깊은 자국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직장 내 괴롭힘이 야기하는 후유증은 흔히 인식되는 것보다 복합적인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의 심리적 안전감이 한 조직에서 무너지면, 다른 모든 조직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특히 짧은 기간의 재직이었어도 그 영향은 길게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글쓴이의 경우 2달 반이라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충분한 경험'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은 길고도 깊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신체가 반응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조직이라는 환경 자체가 신호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28살이 무경력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커리어의 공백'이라고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4년을 낭비했다는 자책도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그 4년은 '회복에 쓴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자신의 상태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기초적인 심리 건강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자격증이나 이력서의 항목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기간은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기초 작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신체 증상을 관리하고, 매일을 견디는 것 자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글 마지막에 남은 말 하나. '살아낸 것을 여전히 고맙게 느낀다'는 표현. 창문 너머로 극단적 생각을 반복하던 그 시간을 견디고, 밤마다 경기 증상에 깨어나면서도 그날을 넘긴 누군가가, 4년 후인 지금 자신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무게감을 가볍게 읽을 수는 없다. 28살의 무경력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그 말 속에 담겨 있다.
📌 원문 발췌
24살 때 2달 반 다닌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이 창문을 뛰어내리면 다 끝나겠지?' 이 생각이 매일 수도없이 들었어요. 덕분에 저는 28살이나 됐는데 무경력 백수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