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회사 주차장을 나설 때가 있다. 자신은 차를 찾아 서둘러 나가려는데, 한쪽에는 고급 차들이 줄지어 있다. 옆자리 빈 공간들을 보며 느끼는 것—현타.
어떤 익명 게시판의 글쓴이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우리 동엔 나랑 둘 정도 밖에 일 안 한다"며 주차장에 대한 관찰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차장에 전업주부 차들 빼곡히 서 있음." 그 한 문장이 담은 것은 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 외로이 남겨진 듯한 박탈감이었다.
이 글쓴이가 주목한 것이 흥미로웠다. 여성이 일을 계속하는지, 그만두는지는 개인의 선택이나 자아실현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관찰이었다. 그것은 가구의 경제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크다는 것으로 보인다.
"살아보니 이게 사실이더라"며 두 가지 조건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첫째, 남편을 잘 만난 경우. 둘째, 친정이 매우 잘 사는 경우. 이 둘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여성은 직장을 떠날 수 있었다는 것.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배우자를 두거나, 친정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면 선택지가 달라진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 대부분은?
월 실수령 2~3백 만원대를 위해 일한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년의 나이에도 "아등바등"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금액대를 한국 중년 여성 취업자들의 현실적인 급여 구간으로 보면, 단순한 용돈이 아니다. 생계비 기본선, 아이들 교육비, 부모에게 드릴 용돈—직접 나가는 곳들이 명확하다. 그래서 이 월급이 "꼭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자아실현이나 사회참여라는 고결한 이유가 아니라, 가구의 생계비를 메워야 하는 책임이 자신의 몫이 된 것. 경제적 자립강요라는 게 이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같은 회사, 같은 부서, 때론 같은 직급이어도 처한 환경이 다르다. 누군가는 "경력을 위해" 일하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일한다. 업무량은 같지만, 그 일의 의미와 무게가 다르다. 퇴근 후의 심리도 달라진다. 전업주부인 옆사람은 저녁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자신은 퇴근 후에도 "이 정도라도 벌어야 한다"는 불안감을 안고 집에 들어간다. 심리적 부담의 층이 다르다.
가까운 동네, 비슷한 나이대—인구통계상 '같은 계층'이라 분류되는 공간에서도 현실의 삶은 극명하게 갈린다. 주차장 한 모퉁이에 줄지어 선 전업주부들의 차. 그리고 혼자 나가는 자신의 차.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누구의 능력이나 선택지가 아니었다. 남편 한 명의 급여 수준, 그리고 친정의 형편. 그것이 모든 갈림길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박탈감이나 운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직업활동이 "선택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필요로서의 노동"이 가구 소득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같은 월급을 받고도, 누군가는 경력을 쌓기 위해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누군가는 "이 정도라도 벌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계속 나간다. 앞사람은 선택지가 많고, 뒷사람은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간극이 곧 한국 여성의 경제현실이고, 그것이 퇴근길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주차장에 전업 주부 차들 빼곡히 서 있음. 우리 동엔 나랑 둘 정도 밖에 일 안 함.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