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의 절반 이상을 회사라는 공간에 바친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다 끝났다는 생각과 동시에 낯선 가벼움이 몸에 묻어난다. 이번 달을 끝으로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내일부터는 알람으로 깨는 아침이 없다.
알람 없는 아침. 은퇴를 꿈꾸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그리는 그 풍경인 것으로 보인다.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눈뜨고 싶은 시간에 눈을 뜨고, 급할 것 없이 커피를 내려 마시는 아침. 조직에서 기대하는 자신의 역할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신의 시간표대로만 움직이는 그것. 얼마나 많은 회사원들이 이 해방감을 상상하며 밤하늘을 봤을까.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일주일, 열흘이 지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하루를 채워야 할까, 라는 그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싫었지만, 역설적으로 구조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침 8시 출근, 정해진 자리, 해야 할 일의 리스트. 그 틀이 없어지면 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공백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은퇴자들이 처음 몇 달을 이 공백 속에서 방황한다고 말한다.
특히 나처럼 집돌이 성향인 사람에겐 더 그렇다. 은퇴하면 보통 무언가 활동적인 것을 권유한다. 여행을 가라, 봉사를 하라, 취미 동호회에 들어가라. 하지만 집돌이는 다르다. 우리는 외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이 많은 곳은 부담스럽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은퇴 후 삶이 공허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채우는 방식이 다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집돌이형 은퇴자가 찾을 수 있는 루틴들은 실내에, 낮은 강도로 펼쳐진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아침마다 좋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작은 의식.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느끼며 창밖 풍경을 관찰하는 시간. 가꾸고 싶던 집 안의 공간을 천천히 다듬어가는 것. 손으로 하는 취미—그림, 독서 기록, ○○씨—들이 그것으로 보인다. 주말 아침 일어나서 하는 그 활동들이, 이제 매일 아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이상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미리 생각해뒀다. 은퇴 후의 시간표를 그려봤다. 무엇을 할지, 언제쯤부터 시작할지, 첫 달은 어떻게 보낼지. 그렇게 '설계된 은퇴'가 현실이 되자, 공백이 공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계획 없는 자유는 불안이지만, 계획된 자유는 설렘이 된다. 내일부터 알람 없는 아침이 온다.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이 되도록, 준비되었다.
📌 원문 발췌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이번 달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담달부터 알람없는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뒹굴 ㄷㄷㄷ.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