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명세서를 펼쳤을 때 의문이 생겼다. 매달 정확하게 같은 날짜에 30만 원이 빠져나가는 이체가 있었다. 아내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3년 전부터 장모님께 드리던 용돈이라는 것.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가족한테 알리지 않은 채.
솔직한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께는 명절 때나 생신에 나눠드리는데, 처가 쪽만 매달 챙긴다는 게 이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날 밤 대화는 불가피하게 격해졌다. 아내는 홀로 계신 장모님의 생활고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간 건 더 말하면 이혼까지 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은 달랐다. 업무 중에도 그 생각만 떠올랐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는 터라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계산이 시작됐다. 장모님은 형님과 따로 살고 계신 반면, 자신의 어머니는 형님 가정과 함께 사신다. 연금만으로 생활하시는 장모님과 달리, 어머니는 아들 가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양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30만 원은 절대 작은 돈이 아니었다. 70만 원 정도의 월 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니, 장모님 입장에서는 생활비의 상당 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깨달은 건 서운함의 정체였다. 돈의 액수가 아니었다.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부부가 같은 생활을 공유하면서도 한쪽이 몰래 지출을 감추고 있었다는 점이 진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주말에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둘 다 뭔가를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노트를 펼치고 양쪽 부모님의 상황을 나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용돈 항목을 명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모님은 매달 30만 원, 자신의 어머니는 명절과 생신에 따로 챙기는 방식으로. 대신 앞으로는 가족에게 나가는 모든 지출을—아무리 작은 금액이든—서로 공개하고 공유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이 친구들과 마시는 술값도 여기 포함되니, 아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내 명의의 비상금 통장은 그대로 두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까지 투명하게 하려면 또 다른 싸움이 터질 게 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 공개보다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타협선'을 찾는 것도 현실적이었다.
흥미로운 변화가 뒤따랐다. 그 이후로 아내가 먼저 어머니 생신을 챙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에는 남편이 말해야 겨우 선물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자발적으로 백화점을 찾아가 내복과 장갑을 골라왔다. 투명함이 가져온 심리적 변화였을 가능성이 있다. 숨겨야 한다는 죄책감 대신 당당함이 생겼고, 그것이 배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장모님도 통화할 때마다 감사의 말씀을 반복하셨다. 자신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고른 내복이라며 동네에 자랑하고 다녔다. 형수님이 남편에게 "나도 선물 받고 싶은데"라고 슬쩍 건넸을 정도였으니, 그 변화의 폭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혼 사건들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분석한다. 금전 문제가 그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통설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가정도 그날 밤에 조금만 더 말했으면 어떤 결말이 됐을지 알 수 없다. 아내가 감춘 것이 온전히 정당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게 드릴 수밖에 없게 만든 환경이 남편 쪽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성찰도 생겼다.
비슷한 상황으로 배우자와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다면: 화내기 전에 한 번 숫자를 함께 써 보는 것으로 보인다. 돈이 나가는 이유, 양쪽 부모님의 상황,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종이에 정리해 보면, 생각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논리'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몰래 드린 게 잘한 건 아니지만 몰래 드릴 수밖에 없게 만든 게 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슷한 일로 부딪히는 분들 있으면 화내기 전에 숫자부터 같이 적어보세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