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커뮤니티의 글 이야기다. 글쓴이는 직장에서 권고사직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됐다.
구석에서 물건을 찾다가 그 순간을 맞닥뜨렸다. 사장과 여직원이 권고사직을 논하는 말소리가 들렸고, 자신은 그들 시야 밖에서 그 장면을 보고 들었다. 문제는, 그 여직원과 글쓴이가 거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 직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만 나누던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글쓴이는 침묵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실을 다른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자신이 알게 된 건 우연일 뿐이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 소식이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다음 날 아침,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여러 통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어제 권고사직을 당한 그 여직원이었다. 시각은 새벽 2시였다. 새벽 2시에 글쓴이의 번호를 수소문해 보낸 장문의 감정 토로였다.
"저 너무 기분 나쁘네요. 갑자기 화가 나고 눈물이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자르는 게 맞나요? 제 감정은 어떻게 해주실 건가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요?"
글쓴이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자신은 이 일과 무관한데, 왜 감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답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소름이 들었던 건 메시지의 다음 부분이었다. "*** 님이 임신해서 제가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요. 그래서 연락드리는 거예요." 상대방은 글쓴이가 현재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굳이 새벽 2시라는 시간을 택해 여러 문자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침착하게 답장을 보냈다. "제가 님을 권고사직 처리한 것도 아닌데, 제 번호를 알아내서 새벽 2시에 연락하실 일인가요? 사장님께 말씀드리세요."
욕설도, 비난도 없었다. 사실만을 근거로 상황을 지적한 답장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본 직장 동료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사람이 잘렸는데 위로도 못 해주고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글쓴이를 향해 "너무 냉정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글쓴이는 혼란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친하게 지낸 직원이 아니었다. 권고사직 결정에 자신이 관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새벽 2시에 감정 폭탄을 받은 쪽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직장에서 큰 감정 위기가 생기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실질적 관계자로 혼동하곤 한다. 글쓴이는 권고사직 결정의 당사자도, 결정권자도 아니었다. 단지 우연히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상대의 감정이 자신을 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답장이 정말 "냉정"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여기 나온 말들은 모두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권고사직을 결정하지 않았다. 번호도 주지 않은 사람에게 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순전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냉정함"이 아니다. 이것은 올바른 선 긋기다.
임신 중이라는 맥락도 중요하다. 글쓴이는 이미 신체적, 감정적 부담을 안고 출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새벽에 받은 공황적인 감정 표출에 침착함을 잃지 않고 대응한 것을 "냉정함"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가. 오히려 그것은 침착함이고 성숙한 대처 방식이라고 보인다.
직장 내 위기 상황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미움받거나, 신고당하거나, 혹은 이 글쓴이처럼 우연한 현장 목격만으로도 "왜 도와주지 않았냐"는 책임 전가가 시작되는 것. 글쓴이의 상황을 보면 감정 표출의 방향이 애초 잘못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무조건 "냉정함"으로 낙인 찍힐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원문 발췌
나랑 사적인 대화는커녕 업무적인 대화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여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했어. 새벽 2시에 그 여직원이 보낸 문자였음.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