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편과 싸운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화가 난다기보다 답답함이 더 크다.

남편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주말에 자신의 부모님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자연스러운 요청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친정도 꽤 오래 방문하지 않았지 않냐는 지적이었다. 양쪽 부모님이 모두 중요한데, 왜 한쪽만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질문이었다.

그때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친정은 다음에 가자."

단 여섯 글자. 그 말이 전부를 바꿔 버렸다.

"다음에가 언제야? 우리 지금까지 항상 다음에라고만 했잖아. 정확히 언제가 다음인데?"

아내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누적된 답답함이 담겨 있었다.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듭된 작은 불평등들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 시댁 방문이 우선이고 친정 방문은 계속 미뤄지는 그 패턴에 대한 불만이었다.

남편은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내의 지적이 마치 감정적이고 부당한 것처럼 다루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화낸 것은 요구 자체가 아니었다. 한쪽 부모님은 항상 급하고, 다른 한쪽은 계속 나중이 되는 그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예민한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부모님이라고."

그 말에도 남편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아내가 자꾸만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식의 논리로 흐르고 있었다. 마치 친정 방문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과한 요구인 양.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를 가장 막막하게 만드는 건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라는 말로 미뤄진 방문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때마다 자신의 부모님이 덜 중요하다는 느낌이 쌓여 왔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는 순간, 자신의 감정과 요구 자체가 문제로 낙인찍혀 버린다.

'시댁은 급하고 친정은 여유 있는 게 당연하다'―이 논리가 마치 자명한 관례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그렇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행동과 선택의 반복 속에서 그 위계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온 것 같다. 처음엔 한 번의 연기(延期)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건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신호가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우울한 건 이 패턴이 앞으로도 반복될 거라는 예감인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의 싸움으로 근본적으로 바뀔 리 없다는 생각 말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며칠 뒤에는 남편이 자신이 왜 화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돌아올 것 같고, 그때도 아내의 답은 같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다음에 같이 가자." 그 말 안에 담긴 것이 정말 단순한 일정 변경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부모님은 덜 중요하다는 메시지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질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작은 상처들이 모여 관계 속에 자리 잡게 될 거라는 게 가장 답답하다.


📌 원문 발췌

남편: 이번 주말에 부모님 뵈러 가자 나: 우리 친정도 오래됐는데 남편: 친정은 다음에 나: 다음에가 언제야 항상 다음에야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