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말 한 마디가 계속 걸린다. "며느리는 남이고, 사위와 형부는 가족이지 않냐"는 식의 로직인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잣대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같은 입장의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순간, 그 모순의 결과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직접 벌어지기 시작한다.

형부와의 거리감은 처음부터 멀었다.

결혼 전만 해도 거의 만난 적 없는 수준이었다. 인사 정도만 나눈 사이 정도였고, 친밀도는 거기서 더 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가 일로 인해 지방 거주를 다니게 되면서, 서울 방문이 빈번해졌다. 그 때마다 자신의 집이 숙소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니뿐 아니라 형부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처음엔 특별할 게 없었다. 가족이 방문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다. 한두 번 자고 가는 정도라면 누구나 받아준다. 그런데 그 방문이 구조적으로, 계획적으로 반복되는 순간 다른 차원의 불편함이 생겨났다.

공간이 많다는 건 마음의 편함과는 별개다.

방이 5개나 남는다고 해서, 그 공간을 누구에게나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그 대상이 결혼을 계기로 새로워진 가족관계 속 사람이라면, 여전히 거리감 있는 친밀도 속에서 같은 집에 묵게 되는 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물리적인 방의 개수가 정서적 거리감을 메워주지는 못한다. 이성인 형부가 부모 없이 드나드는 상황은 친밀도와 무관하게 거주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불편을 만든다.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부모의 부재다.

은퇴 후 지방에서 농사를 주업으로 살고 있는 부모님은 서울 집에 거의 들르지 않는다. 그 결과 그 집이 부모의 공간에서 형제자매들의 공유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언니는 그 공간을 거의 자신의 것처럼 다루면서 형부를 끊임없이 들여보낸다.

더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빠에게 이 상황을 숨기고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아빠가 알면 이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 하에, 불편한 감정을 그냥 삭혀가며 "알겠어, 그냥 넘어가자" 하는 식의 심리 게임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생활 편의는 자동으로 뒷전이 된다.

결국 가족이라는 명분이 생활권을 덮어버린다.

결혼으로 독립을 선택한 입장에서, 더 이상 그 집의 주인도 아닌 상황에서, 거주 결정권이 없는 타인의 남편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드나드는 것을 묵묵히 수용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게 당연한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편안함과 프라이버시라는 기본적인 생활권의 문제를, "방이 남으니까 뭐 하냐"는 식의 반박으로 덮어버리는 건 아닐까.

일개 거주자의 불편을 '유별남'이라고 부르기 전에, 그 불편함의 근저에 '가족'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무심결에 다른 사람의 생활을 침범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사연의 핵심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며느리가 남이라는 말 꽤 자주하는데 사위, 형부는 자꾸 가족이라고 들이미는데 서로 너무 불편해요. 제가 유난인가요? 결혼해서 독립했는데 이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