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50일 정도 되는 산후 초기 상황에서 동서의 어머니 장례식 소식을 받았다. 이미 친정 아버지도 돌아간 상태라 아이를 맡길 친인척이 없었고, 장례식이 있는 곳까지 4시간을 가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부모님도 글쓴이가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고, 남편과 시부모님은 1박을 다녀왔다.
글쓴이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대신 성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의금을 동서와 사돈 어르신이 주신 금액보다 넉넉하게 보냈고, 남편과 시부모님이 직접 참석하는 형태로 가족의 의사를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달랐던 것 같다. 열흘쯤 지났을 때 동서가 서운함을 드러냈다. 연락이 없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글쓴이가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상대가 먼저 연락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천천히 연락하려 했던 이유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를 잃은 직후 정신없는 와중에 연락을 받으면 더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자신도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어서 그 시기의 감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글쓴이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 조의금, 남편·시부모 참석, 시간을 두고 연락하려던 의도—모두 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다만 상실 직후의 감정 앞에선, 객관적인 성의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동서는 '마음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연락받길 원했던 것이고, 글쓴이는 상대의 회복을 배려해서 침묵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둘 다 선한 의도였는데 그것이 엇갈린 셈인 것으로 보인다.
조의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조의금의 규모, 참석 여부, 연락 타이밍—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상실 직후 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적 설득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글쓴이가 아무리 '정신없을 때 연락하면 더 힘들 것 같았다'고 설명해도, 동서의 '침묵=무관심'으로 받아들여진 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조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설명보다는 공감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힘들겠구나'는 한 마디가 '내가 이런 이유로 연락을 늦췄다'는 긴 설명보다 더 깊게 와닿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동서도 본래 착한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글쓴이의 의도가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상실의 충격이 가시고 감정이 안정되었을 때, 가볍고 따뜻한 연락 한두 개가 지금 긴 설명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상실 직후라는 민감한 시기에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맞지 않았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동서의 서운함을 인정하고, 짧은 말로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 원문 발췌
얼마전 동서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제가 출산한지 50여일 정도 밖에 안돼서 못갔어요. 친정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애 맡길 친정도 없었고 네시간 거리라 아기까지 가기는 힘들어서 못갔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