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9년. 그 세월 동안 시어머니는 외모에 대해 부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머리를 그렇게 묶으면 나이 들어 보인다, 살이 좀 찌면 더 예뻐질 텐데, 오늘 화장이 좀 진한데 자연스럽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종류와 강도는 다양했지만, 모두 한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당신은 이렇게 해야 더 나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더 난처했던 것은 이 말들의 배경이었다. 동서나 시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심지어 친척 어른들이 모인 명절 테이블에서 터져 나왔다. 공개적인 무대에서 외모가 평가받는 경험이 주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반박 자체가 어려웠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자신의 선택을 옹호하는 것이 얼마나 창피할까. 결국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대응이었다. 그렇게 침묵은 반박이 아닌 묵인으로 고착된 것처럼 보였다.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웃음 뒤의 불편함이 쌓이고, 그 말들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타인의 반복된 평가가 자신의 자기상까지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은 반박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여성이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시어머니의 눈으로 자신을 재해석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를 길러볼까, 밝은 색 옷을 사야 하나 싶으며 자신의 외모를 시어머니의 기준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침묵의 진짜 대가로 보였다. 단순히 기분 나쁜 말을 견딘 것을 넘어서,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스스로 의심하고 타인의 평가에 맞추려는 습관이 몸에 베었다는 인상이었다. 자기 시선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에 가까워진 셈이었다.

그런데 지난주의 친척 모임에서 일이 터졌다. 시어머니가 또 한마디를 꺼냈다. '요즘 며느리들은 좀 더 밝은 색을 입으면 좋은데, 그 옷은 왜 이렇게 칙칙해 보이지?'

그 순간, 본인도 예측 불가능하게 입에서 단어가 튀어나왔다. '어머니, 저 이 옷 좋아서 입은 거예요.'

딱 그 한마디였다. 대단한 주장도 아니고, 큰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선택을 말한 것뿐이었다. 주변은 잠깐 조용해졌다가 시어머니가 '그럼 그런가'라고 넘어갔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의 답변은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니까 뭐라고 하지 마시고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돼요'였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처럼 들렸다. 하지만 당사자의 감정 온도는 다른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일상적인 잔소리이지만, 19년을 견디며 웃어넘긴 당사자에게 그 한마디는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처럼 보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기준과 선택을 입 밖으로 낸 것. 시어머니의 평가 틀 밖에서 스스로를 주장한 것. 그것이 비록 짧고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자신의 자존감을 되찾는 실마리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그 말을 꺼낸 이후로 거울 앞의 자신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외모를 자신의 기준으로 보는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한 느낌. 침묵하던 19년 동안 빼앗겼던 자기 시선을 되찾는 첫 번째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원문 발췌

내 외모를 내가 보는 게 아니라 시어머니 눈으로 보게 된 것 같은 느낌. '어머니, 저 이 옷 좋아서 입은 거예요' 한마디가 나왔을 때, 19년 만에 처음 괜찮습니다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