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과일을 판다는 연락이 시어머니를 통해 들어왔다. 집이 가까우니 빨리 와서 사달라고. 마침 할 일이 없어서 내려갔는데, 과수원의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손상되거나 흠집이 난 과일들을 거의 떨이 가격에 처분하고 있었고, 품질도 기대 이하였다.

과일 하나를 집어 들어 손으로 닦아보니, 절반 이상이 곪아 있었다. 일부는 거의 상할 지경이었다. 옆에 있던 분이 "이런 걸 사람 먹으라고?"라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순간 시어머니가 웃으며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얜 이제 애기 다 낳아서 상관없어."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글쓴이는 그 순간 다르게 해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핏줄을 다 낳아줬으니까, 이제 내 몸 따위는 상관없다는 뜻인가? 혹은 이제 쓸모가 없다는 건가? 시어머니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와 상관없이, 그때의 감정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언가 깊게 상처를 입은 느낌.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가 이런 말을 했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런 말에 상처받는 게 뭐 하는 짓이냐"는 식이었다. 아내의 감정을 일축해버리는 그 한마디가, 시어머니의 말보다 더 크게 남았다. 자신의 감정을 배우자마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깨달았다.

물론 시어머니는 악의가 없었을 거다. 성격도 원래 엉뚱한 편이고, 웃기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그럼에도 왜 이 정도의 농담에 이렇게 상처를 받았을까? 그 질문이 계속 남았다.

관계 속에 쌓인 맥락이 있었다. 임신했을 때와 아이가 어릴 때는 달랐다. 시댁에서 조심스럽게 대해주었고, 뭔가 챙기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그런 배려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홀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일시적 필요'에서 '일상의 관계'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도구처럼 취급되는 감각. 임신과 육아라는 역할이 필요한 동안은 소중한 대접을 받다가, 그 역할이 끝나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느낌.

시어머니의 한 문장은, 그런 배경 위에서 읽혔다. 평소의 작은 무시들이 쌓여서, 단순한 농담을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발언의 진실성이나 의도는 그 순간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게 시어머니가 나를 보는 진짜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반응도 비슷한 구조였다. 아내가 느낀 감정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던 것 아닐까? '농담이었으니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적 설득. 하지만 감정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관계에 축적된 불안감은, 한 마디 말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 감정을 듣지 않고 무시해버린다면, 상대방은 고립된다.

이 경험이 보여준 건, 상처의 원인이 반드시 지금의 한 마디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악의 없는 발언이 상처가 되는 건, 그 말이 평소 관계에서 축적된 불안과 의심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불안을 털어놨을 때 배우자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상처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 원문 발췌

"얜 이제 애기 다 낳아서 상관없어"라는 시어머니의 말이, '핏줄을 다 낳아줬으니 건강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