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이상 한국 진보 정치의 생태계는 특정 미디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고라 토론장에서 시작된 온라인 정치 참여는 각종 팟캐스트와 방송 프로그램으로 확대되었다. ***가 진행하는 각 프로그램은 단순한 시사 교양을 넘어, 후원금이 모이고 선거 캠페인이 벌어지며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지가 다져지는 실질적 거점 역할을 해왔다. 이 플랫폼에서 배운 정치 논리, 여기서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오늘의 코어 지지층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의 '***' 발언이 나오자,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코어 지지자들을 향한 경멸적 낙인이 터져 나왔는데도, 이 플랫폼에서 당선의 발판을 얻었던 정치인들과 주변 인물들이 보인 반응은 거의 없다는 평가다. 공식적인 항의, 유감 표시, 대변 발언 —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글쓴이는 깊은 의문과 분노를 드러낸다.

이 침묵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돈의 흐름과 정치적 동원을 따라가야 한다. 선거철이 되면 ***이 주최하는 무대에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출마 선언과 정책 설명은 열정적인 지지층의 후원금으로 이어진다. 캠프는 동원되고, 투표 독려는 활발하고, 당선의 순간까지 이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집권 후, 혹은 임기 중인 이들은 같은 열정의 대상을 '강성 지지자'라는 명명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는 지적이 있다. 마치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볼일을 본 뒤, 물을 내리고 나간 화장실처럼 — 원문 글쓴이의 비유를 빌리면, 그런 느낌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온라인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해외에서 수백, 수천 킬로를 이동해 투표에 참여했다는 해당 글 댓글들을 보면, 이 배신감은 실질적인 헌신을 치른 층까지 닿아 있다고 보인다. 한 번의 선거 투표를 넘어, 적극적 참여와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글쓴이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정치인들과 그들의 플랫폼은 '***' 낙인이 나온 이 순간, 형식적이라도 지지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 플랫폼에서 얻은 명성, 그곳 출신 정치인이라는 정통성까지 자산으로 삼으면서 정작 위기의 순간 침묵한다면, 유권자와의 암묵적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다. 장기간의 신뢰 관계는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교훈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사건으로 읽힌다.


📌 원문 발췌

'문조털래유'라는 희대의 경멸적 표현에 대해서 그 어떠한 공식적인 항의, 유감표시가 전무한지 의문입니다. 필요할 때에 출연하여 지지세를 얻고 당선 되고, 후원금 받아 국회의원, 지자체장 임기 채웠으면 할 도리 다 했다고 결론 짓나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