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를 보낸 지 이제 1년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대로 누구한테 꺼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 "나는 이렇게 다 챙겼는데 왜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느냐"는 식으로라도 말했다간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았으니까. 아니면 "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어?"라며 나를 의심하는 눈길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있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혼자 담아두었다.
나와 남편은 시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우리 옆에서 그것을 지켜봤다. 나중에 무언가를 후회하는 것보다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으니까다. 요양병원에 모시기 전까지 병원을 오갔다. 검사 결과를 받아다주고, 아버지의 걷기를 돕고, 간병인을 따라다녔다. 날씨가 안 좋아도, 우리의 일이 있어도 가야 할 일들이었다. 어떤 날은 직접 소변을 받아서 검사실에 가져다주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매주 병원 가는 날. 아버지는 91세셨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슬픔이라는 건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가 가장 많은 위로를 받고 계셨다. 조문객들이 몰려와 목례를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저녁을 먹고 피곤하다며 시댁으로 돌아가셨다. 시동생들도, 동서들도 옆에 있었다. 슬픈 얼굴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직장 일이 있다는 이유로 요양병원에 서너 번 정도만 나타났었다. 우리는 달랐다. 매주 일요일마다 아버지를 뵀다. 4주, 8주, 그렇게 계속되는 일들.
그래서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은 기묘한 것으로 전해진다. 슬픔이라기보다는, 공허한 성취감 같은 것. 후회가 없었다. 다 해보았으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쏟아부었으니까. 어쩌면 그게 내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자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요즈음 시댁 집에 혼자 계신다. 그리고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누굴 일시킬 필요도 없고, 누구의 짜증을 견뎌낼 필요도 없다고. 남편이 없으니 얻은 자유라는 뜻일 것으로 보인다.
나도 어떤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어머니의 행복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 평화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라는 공허함이고, 시어머니의 행복은 '이제 자유롭다'라는 해방감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상황을 마주했는데, 무게는 정반대다. 누가 더 얻었는지, 누가 더 잃었는지는 명확하다.
그렇게 시댁 집의 미래가 그려졌다. 시어머니가 혼자 남으신 이 집을 막내 시동생에게 주려는 꿈을 꾸신다고 한다. 집을 살 때 남편이 가장 많이 보탰다는 게 정말이지 아이러니다. 우리 부부가 쏟아부은 간병, 병원 왕래, 검사 샘플, 그 모든 시간과 손길은 어떤 형태의 보상으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한편 집은 누군가의 상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게 공평한 세상이라니, 정말이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호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그런 기분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충분하다. 더는 하지 않겠다.
📌 원문 발췌
시동생들도, 동서들도 모여서 슬픈 얼굴하지만 나는 편했어요. 난 다 해보았고. 쏟아부었으니까.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