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자꾸 자꾸 떠올라서 억울함을 떨쳐낼 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친정 어머니가 편찮을 때 자신이 챙기려고 하면, 남편이 함께 움직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댁 경조사나 모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나 보다. 그때 남편이 던진 질문이 이거였다. "친정은 당연히 가면서 시댁은 왜 그러냐?"
이 말이 왜 자꾸 거슬리는지 생각해보자. 아내의 입장에서는, 친정은 자신이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맺어진 가족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시댁은 결혼 이후에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 관계다. 남편이 주장하는 '같은 기준'이 성립하려면, 이 두 관계의 기반 자체가 같아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과연 그럴까.
원가족과 신가족을 '공평하게' 취급하려면, 먼저 누적된 감정의 깊이를 인정해야 한다. 친정에 대한 책임감과 친밀감은 유년기부터 무의식적으로 쌓여왔다. 식탁 모습부터 어머니의 버릇까지, 세세한 부분들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시댁은 어떨까? 생면부지인 남편의 가족을 새로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아내에게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그냥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정도가 아니다. 감정의 토대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남편의 주장에서 놓친 부분은, '같은 기준'을 매기려면 기준 자체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행동의 결과만 비교하면, 마치 두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아내가 친정에 쏟는 에너지와, 시댁에 쏟아야 한다고 요구받는 에너지의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한쪽은 '돌봄', 다른 쪽은 '의무' 정도의 느낌으로 경험되는 것 아닌가.
이런 갈등은 결혼생활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배우자 쪽에서 '공평성'을 주장할 때, 그 공평성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대화가 엇갈리는 경우들인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감정적 부담을 호소하고, 남편은 행동의 공평성을 요구한다. 서로 다른 차원에서 출발했으니 의견이 맞닿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풀려면, 남편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도 아내의 친정에는 '손님' 같은 위치에 있지만, 아내는 자신의 시댁에선 '새로 들어온 외부인'의 위치에 있다는 걸. 태어날 때부터 있던 사람과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그걸 같은 기준으로 재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셈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갈등이 해소되려면, '공평'이 무엇인지를 함께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다. 모두에게 같은 노력을 요구하는 게 공평한지, 아니면 관계의 토대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노력하는 게 공평한지. 그 답을 찾지 못한 채로는 이런 말싸움이 자꾸만 반복될 수밖에 없을 거다.
📌 원문 발췌
친정은 제 가족이고 시댁은 생면부지 가족을 받아들인 거잖아요. 이 두 개가 어떻게 같은 무게냐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