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겹치는 시점에서 나오는 요청이 문제다. 글쓴이의 남편, 시아버지, 시누이가 모두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바쁜 시기가 정확히 겹친다. 원래 시조카를 주로 돌보던 시조부모는 고향으로 내려갔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여전히 일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글쓴이만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근무 일정을 가진 사람이 된다. 회사에 다니지만 바쁜 시기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시누이는 글쓴이에게 손을 내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식사 문제가 걸린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시조카는 밥을 한 끼 먹는 데 1시간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늘 시간을 재촉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자신의 자녀들은 투정하면 밥을 치워버리는 일관된 원칙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그 기준을 시조카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게 글쓴이의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아이에게 그렇게 대하면 훈육이 아니라 무례로 해석될까봐서다. 결국 글쓴이는 시조카가 먹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밖에 없는 수동적 입장에 놓인다. 이게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싶으니,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거절의 논리가 약해 보인다. 장례식 때 한 번은 실제로 봐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날 점심은 1시간을 들여 먹였고, 다음날 새벽 6시부터 식사가 시작됐다. 글쓴이와 남편이 자신의 자녀들을 칭찬하자 시조카도 따라 먹더라는 일화까지 생겼다. 그것이 시누이의 눈에는 '가능함'의 증거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누이는 "주말에 맡길 테니 밥 먹는 것만 기다려달라"며 다시 연락한다. 한 번 안 된 게 아니었던 전례가 있으니, 상대는 다음 요청에 더 확신을 가지고 부탁하게 된다.
거절했는데도 부탁은 계속된다. 남편과 시댁은 "봐줄 사람이 없지 않냐"는 암묵적 기대를 드러낸다. 시조카를 키우는 것이 시누이의 책임이지만, 현실적으로 시터는 평일 저녁만 가능하고 주말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2~3주 정도 바쁜 시기가 1년에 3번 반복되니 주말 시터를 따로 구하기도 어렵다는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 일해야 돈을 더 번다는 시누이의 입장도 한번 들어볼 만하다. 하지만 글쓴이 입장에서는 한 번 봐주는 게 계속될 길을 터주는 것 같아서, 선뜻 '좋아'라고 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을 들여다보면, 선의의 한 번이 정기적 의무로 고착되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방의 기준점이 "안 되는 사람"에서 "한 번은 한 사람"으로 이미 바뀌어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거절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그 근거가 일시적 거절이 아니라 구조적 불가능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식사 훈육의 방식 차이, 셋을 함께 돌봐본 경험이 힘들었던 것, 그리고 한 번의 도움이 반복으로 이어질 우려 같은 것들을 명확히 짚고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계가 소원해질까봐 계속 웃어넘기다 보면, 결국 글쓴이의 주말이 시조카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당연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원문 발췌
같이 놀러가면 한시간 넘게 빌면서 먹이더라구요. 저희 애들은 반찬투정하면 치워버려서 밥 잘먹어요. 한 번 봐주면 계속 될 것 같아서 봐주기 싫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