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생신을 놓고 부부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40개월간 함께해온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반복된 배려가 어느 날 '당연'이 되면서 빚어진 갈등이라는 것이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의 호소다. 배우자는 8월 말 시험을 앞두고 있고, 시댁 어른의 생신이 5월이라 시간 간격이 4개월 정도 난다. 글쓴이 입장에서는 이전 두 번의 경우 배우자의 시험 준비를 고려해 참석하지 않도록 배려해왔다고 한다.
그 배려는 반복됐다. 지난 3년 사이 두 번의 생신에서 배우자는 전화로 안부만 물었고, 글쓴이는 그 선택을 받아줬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상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런데 배우자는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한다. 명시적으로 양해를 구하거나 글쓴이가 먼저 제안하지 않은 채로 일방적으로 빠지려 한다는 점이 글쓴이의 불만이라고 한다. 그 뒤에는 "이게 당연한 건가?"라는 의구심이 깔려 있었다.
배우자도 나름의 설명을 한다. 당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매년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것. 반복된 배려가 일종의 선례이자 기준으로 자리 잡혔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케이크를 준비해 축하해드리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는 입장이 나왔다. 글쓴이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그렇다면 배우자도 직접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케이크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배우자는 또 다른 대안을 꺼냈다. 자신도 글쓴이의 부모 생신을 건너뛸 테니, 대신 자신의 가족행사(생신 다음날 있는)에 글쓴이가 불참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 글쓴이는 "내가 안 간다고 한 적 없는데 왜 그게 대안이 되는가"라는 반발을 했다고 한다. 배우자는 한 달 전에 이미 자신의 부모에게 참석 의사를 전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글쓴이가 느낀 모순이 두드러진다. 시험을 이유로 한쪽 가족행사(글쓴이의 부모 생신)는 선택적으로 건너뛰면서, 다른 쪽 행사(자신의 가족행사)는 이미 약속한 것이라며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논리다. 배우자의 입장에서도 이를 불충분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글쓴이의 부모를 대접하지 못하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자신이 한 가족을 다른 가족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험이라는 제약 아래에서 이미 약속한 행사에 참석하고, 다른 쪽은 케이크와 통화로 대신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 것으로 보인다.
이 갈등의 심층에는 배려가 어떻게 '당연'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배우자의 관점에서는 '반복된 배려가 곧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작동했고, 글쓴이의 관점에서는 '매번 새롭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작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두 전제가 명시적으로 대화되지 않은 채 각자의 행동 기준으로만 작동했을 때 생기는 갈등 양상이 이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 원문 발췌
2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하지만 매년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런줄 알았다고 의견. 1은 2가 양해를 구하거나 1이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왜 빠지려고 하냐고 하는 의견.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