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남편 형수의 생일을 챙기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그 요청에 직면하며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그 생일을 챙겨야 하는 관계에 있는 것일까.
현실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올케로부터 챙김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일은 특별히 챙겨진 적이 거의 없었고, 명절에 선물이 온 기억도 드물다. 그런데 이제 상대방의 생일은 챙기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일방적인 구조가 글쓴이에게는 깊은 억울함으로 다가온다.
가족 관계에서 주목할 점은 "챙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있다. 명시된 계약이나 약속 없이, 관습으로 천천히 고착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쪽이 선의에서 시작한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에게는 의무로 변질된다. 특히 한쪽만 계속 챙기는 구조가 형성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자발적인 배려가 아니라 부당하게 느껴지는 의무가 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억울함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상호성의 부재, 즉 일방적으로만 챙기는 불균형이 쌓이면서 감정적 피로와 불신이 동시에 축적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설명은 "올케 형편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이었다. 이 설명은 상황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의 여지를 준다. 경제적 여유의 차이가 실제로 가족 간 선물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그 상황을 자신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은 분리되어야 한다. 형편이 안 좋다는 것이 글쓴이의 감정적 피로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설명은 설명일 뿐, 그것이 자동으로 순종으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적으로 글쓴이가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그냥 챙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선택은 그 행동이 새로운 관행으로 고착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앞으로도 계속 챙겨야 한다는 의무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솔직하게 불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감정 소비가 줄어들 수 있지만, 시댁과의 관계가 경색될 위험이 수반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간의 태도가 현실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불균형한 관계에서 완벽한 상호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올케 생일은 최소한의 예의 선에서만 챙기되, 자신의 불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방식도 있다.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 에너지 소모를 의도적으로 줄이면서도 완전한 단절은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계를 유지하되 자신의 감정 에너지를 무한정 쏟지 않을 선택이 현실적일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시댁과의 오랜 관계를 고려할 때 지속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근데 저는 그쪽에서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쪽은 안 챙기는데 나는 챙겨야 하는 구조가 솔직히 좀 억울하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