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유튜브에서 정치 관련 영상을 볼 때면 웃음이 나기보다는 답답한 감정이 자주 올라온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2026년 7월 1일은 달랐다.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는 이날 매불쇼 방송에서 출연자 ***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고 밝혔다.
왜 글쓴이는 ***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 이유는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수습자 부모들을 지원하려는 자원봉사자로서, 글쓴이는 자신의 차에 부모들을 태우고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도시에서 출발한 그는 여러 중부 지역을 거쳐 서울의 정부청사 분수광장, 해안 지역의 대형 조선소 현장까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팅에 함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안의 한 등대에서는 신부와 수녀들과 함께 미사에도 참석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은 결코 짧지 않았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차를 몰아야 했고, 천 킬로미터를 훨씬 넘는 거리를 주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름값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이 시간을 "네다섯 달을 울고불고 하며 다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험 속에서 글쓴이는 수천 명의 동지들을 만났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행동에 필요 이상으로 감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 뒤 징역에서 나온 한 정치인이 글쓴이에게 투게더(함께 하자)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대는 서울의 강남권 건물에 있는 벙커1이라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열달 남짓 글쓴이는 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벙커1은 정치 관련 강의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였고, 강의를 마친 뒤 뒷풀이 겸 함께 식사를 하는 구조였다. 그 모든 음식 준비와 분위기 조성을 글쓴이가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글쓴이는 수십 명의 정치인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밥을 차려준 여러 팀들과 사람들 대부분이 감사를 표했지만, 한 인물만 유독 달랐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였다. ***는 주방까지 직접 들어와 90도로 인사했고, 글쓴이를 "선배님"이라고 호칭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당시 특정 지역의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고, 상위권 대학을 나온 것도 절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학력도 배경도 없었다. 그저 세월호 현장에서 밥을 해서 나눈 행동만 있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는 바로 이 행동을 존중해주었다고 글쓴이는 느꼈다.
글쓴이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이 사람을 사람처럼 대해주는" 경험이었다. 학생순화교육에 끌려갈 정도로 불안정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는 어떤 사람과도 동등하게 투게더할 수 있다는 꿈과 자존감을 심어주었다고 밝혔다. 벙커1에서 만난 수십 명의 정치 관련 인물 중에서 ***만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게 글쓴이의 평가다.
흥미롭게도 글쓴이는 세월호 현장 경험에서 한 에피소드를 추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치인이 신입의원들을 세월호 현장으로 데려왔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 기자가 촬영차 현장에 들어왔는데, 글쓴이가 밥을 차려준 수천 명 중 유일하게 감사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는 세월호 현장에서도, 벙커1에서도 글쓴이의 행동을 존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자신의 고백이 "무지성의 지지"로 해석될까 봐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직접 만나고 경험한 것에서 비롯된 평가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벙커1에서 봤던 정치 관련 사람들 중에서는 ***만 좋은 사람이었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밝혔다.
📌 원문 발췌
***는 주방까지 들어와 90도로 인사하며 나를 동지 취급해주었다. 어떤 사람과도 동등하게 투게더할 수 있다는 꿈과 자존감을 심어주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