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당일, 엄마는 시어머니를 교회로 데려가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리 딸에게 말하지 않은 채였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딸이 급히 말렸고, 엄마의 반응은 "나를 괴롭히지 마라", "너 이러는 거 시부모한테 다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평생 무관심했던 엄마가 처음으로 보인 '진정한 관심'의 정체로 읽혔다.
8년을 자취하는 동안 엄마로부터 온 연락은 대부분 교회 이야기였다고 한다. 안부도 생활도 물은 적 없었다. 대학 포기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을 때도 부모의 관심은 없었고, 결혼을 앞두고도 "어떠니?"라는 평범한 모녀 대화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딸의 회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딸은 용돈도 드리고 필요한 물건도 사드리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용기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싸우려는 의도가 아닌, 진정한 질문이었다. 왜 평생 내 감정과 삶에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가.
돌아온 답은 역공이었다. "내가 더 힘들다", "네가 나를 안 괴롭혀서 행복하다"는 식의 반응들이었다고 한다. 딸이 남편과 잘 산다고 말했을 때도 축하 대신 "나도 더 잘 산다", "나는 새아빠랑 더 행복하다"는 비교가 들어왔다. 결혼 전부터 평가와 비교의 습관이 그대로 유지된 셈이었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시어머니의 연락처를 알아내 여러 차례 종교 이야기를 건넸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무교인 상태였고, 딸의 동의도 시댁의 의향도 먼저 묻지 않은 채였다. 이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고 전해진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날에는 딸과 남편의 의사를 먼저 묻지 않고 외할머니 집으로 직접 데려가 기도를 시켰다고 한다. 무교인 남편은 예기치 않은 종교 의식에 당황했고, 엄마는 "할머니 집 가는 건 기본"이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명절 일정도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딸과 남편이 다른 계획을 잡아도 엄마가 원하는 식당만 고집했다는 것. 남편과 만난 다섯 번 중 네 번이 같은 곳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구체적인 숫자들이 축적된 불편함을 말해주는 듯한 것으로 전해진다.
딸의 언니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결혼 후 언니는 친정을 거의 방문하지 않고 시댁을 훨씬 더 자주 찾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니는 배려하는 가정에서 "이런 게 가족이구나"를 깨달았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피를 나눈 가족보다 선택한 가족이 더 편하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났다.
관심은 없으면서도 개입은 하는 이 역설적인 방식 말인 것으로 보인다. 딸은 무시되면서도 동시에 도구처럼 동원되었던 것 같다. 안부를 묻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 맺은 가족의 경계까지 침범하는 행동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게 딸의 고민이었다. 개인의 감정은 존중받지 못하면서, 엄마의 신앙은 시어머니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딸이 최종적으로 묻는 것은 이것이었다.
딸의 의사도, 상대방의 동의도 없이 종교 이야기를 건넨다는 행동이 선의의 범주인지, 아니면 경계 침범인지에 대한 질문. 관심이 없으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것도 자유지만, 일방적으로 상대의 영역까지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그 경계가 어디부터 시작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 원문 발췌
결혼식 당시 엄마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어머니를 교회에 데려가려고 하셨고, 제가 뒤늦게 이를 막았습니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내 여러 차례 연락하며 종교 이야기를 하셨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