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글인 것으로 보인다. 부친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그보다 더 깊은 상처가 있다는 사연이었다.
글쓴이는 최근 아버지를 여읔다고 한다. 오랜 병고 끝의 일이었다.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고, 고인의 뜻을 존중해 가족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의 조문을 받지 않고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르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결정 뒤에는 고인의 유지를 따르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글쓴이가 가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배려도 담겨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시댁에 미리 연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히 진행하니 조문객은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어떤 기대를 가졌을까. 조문객은 받지 않더라도, 가까운 인척으로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최소한의 인사는 할 거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잘 보내드려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같은 위로 메시지 한두 통 말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가족에게 건네는, 기본적인 예의라고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례 기간 내내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며칠이 흘렀고, 글쓴이의 답답함만 깊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을 정성껏 배웅하는 와중에도, 차라리 한 통의 소식이라도 달라는 마음이 자리 잡혔을 것으로 보인다.
장례 후 3일이 지났을 때다. 그때가 되어서야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돌아가셨나요?'라는 물음이었다. 이미 장례가 끝난 후였다. 남편이 미리 알렸다는 것을 재확인했지만, 시어머니의 반응은 그뿐이었다. 위로의 말이나 부조금도 없었다.
여기서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선명해진다. 글쓴이는 역대로 어떻게 해왔는지 떠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형이나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 글쓴이는 직접 찾아가 조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조금도 통상적인 액수보다 더 많이 챙겼다. 가족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성의 있는 행동들은, 당연히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돌아올 거라 암묵적으로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시댁 쪽에서는 어떤 위로도, 그 기본이 되는 연락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남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을 떠나 보낸 슬픔도 크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이해와 위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더 깊은 상처였다고. 얼마나 섭섭한 마음인지 있는 그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의 반응은 글쓴이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고 한다. 아내의 감정 표현을 듣자 오히려 화를 냈다. 이 순간, 또 다른 갈등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대항'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시댁과 글쓴이 사이의 예의 문제를 넘어, 부부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 자체에 이미 균열이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일 수 있다.
남편이 시댁에 '조문을 받지 않는다'고 알린 것과, '위로 연락을 하지 말라'는 뜻은 명백히 다르다. 하나는 외부 인사들에 대한 형식적 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가족에 대한 기본 예의를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혹은 시댁이 이 두 메시지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말 속에 '연락까지도 불필요하다'는 의도를 읽어낸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소통의 언어 차이일 수 있다는 의미다. 명확하게 기대를 표현하지 못한 측과,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측,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더 근본적인 물음이 남는다. 글쓴이는 '제가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하나요'라고 묻고 있다. 이 질문 속에는 부친의 상실 앞에서, 그리고 남편과 시댁의 태도 앞에서 길을 잃은 한 명의 며느리가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예의도 감정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짙어진다.
상실의 슬픔도 견디기 힘든데, 그 와중에 가족의 무관심까지 겹쳐온다면, 그것이 얼마나 버겁고 깊은 상처가 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원문 발췌
시어머니께서 장례가 끝난지 3일이 지나서야 아버지 돌아가셨나고 물어셨고, 그 어떤 위로나 부조금도 없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