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이라는 것은 참 묘한 위치에 있다. 법적 강제력도 없고,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닌데, 한 번 "주겠다"고 입에 담으면 마치 빚진 것처럼 불편해진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글에서 한 글쓴이가 호소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결혼한 지 수년, 시가에서 먼저 축의금을 주겠노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남편을 통해 요청했을 때도, 전화로 직접 들었을 때도 "주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런데 반복된 약속 끝에 실제로 들어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편 친정은 달랐다. 엑셀로 명단을 정리하고, 10원 한 푼 빠지지 않게 모두 챙겨 보냈다고 한다.
글쓴이가 느낀 서운함은 당연해 보인다. 축의금이 원래 자신들의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도 했지만, 먼저 입 밖에 낸 약속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해도 불편함이 컸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시가 쪽 남편의 사촌이 결혼을 올렸고, 상대방은 이 자리에서 축의금을 건넸다. 글쓴이 부부는 받은 축의금이 없는 채로 상대방 경조사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이 상황의 곤란함은 단순 금전 손해를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축의금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되찾고 싶어도, 상대방은 이미 지난 일을 들먹이기 어색하다는 식으로 요청을 피해날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시가처럼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는 반복된 독촉 자체가 관계 손상의 비용으로 작용하곤 한다. 돈보다 관계가 더 커지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상대 경조사에 축의금을 내는 선택지는 어떨까. 이 역시 깔끔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글쓴이 부부가 순손실을 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가 쪽에서 "우리도 줬잖아"라는 식으로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내지 않기로 한다면? 그것도 남은 인상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양쪽 모두에서 깔끔한 선택지가 없는 구조라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신혼 부부의 통장이 합쳐져 있다면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개인의 돈이 아니라 공동 재정이 되는 순간, 한쪽 배우자의 원가족 이슈가 곧 부부 간 재정 갈등으로 번지기 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쪽 배우자는 "저쪽이 안 줬으니까 우리도 원칙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한쪽은 "앞으로 계속 마주칠 관계를 생각하면 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같은 통장이지만 경제관과 관계관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곤 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감정과 실리를 따로 보는 능력인 것 같다. 시가의 약속 파기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서운함을 즉각 현실의 선택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함께 어느 정도 선을 그어 줄 것인지, 장기적으로 관계 소모를 줄이면서도 자신들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대화하는 과정이 더 필요해 보인다.
📌 원문 발췌
시가쪽 축의금 준다고 먼저 하셨는데 안주셨어요... 남편 사촌이 결혼해서 축의금을 넣었는데 우리는 받은 게 없는데, 이럴 때 우리가 내야 하는 건지...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