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된 드라마 <참교육>은 학교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많은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학생의 폭력, 모욕, 무시 앞에서 무력한 교사의 현실—이것이 드라마의 중심이다. 교사들은 이 장면들이 자신들이 마주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며, 드라마가 그동안 침묵되어온 학교 현장의 고통을 드러내준다고 느낀다.
그런데 교육 현장의 당사자 조직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복잡한 입장을 드러냈다. 전교조는 제작 단계부터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교총은 공식 성명을 통해 드라마 속 체벌 방식이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의 반발이 단순한 콘텐츠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것은 교권 침해에 대응하는 방식을 둘러싼 근본적인 노선 차이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교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은 같지만, 그 방법과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를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만 보기는 어렵다. 법원의 판결이 약하거나, 교육부의 조치가 미온적이거나, 실제 징계 절차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현실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깔려 있다. 시청자는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신속하고 강력한 응징'을 드라마 속에서 대리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의 작동 방식이다. 대중은 제도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교권을 드라마 속 폭력으로 회복되는 '판타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보상받는 심정이다.
흥미롭게도, 드라마 내에는 교원단체의 시위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는 창작물이 현실의 갈등을 얼마나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를 제기한다. 극적 카타르시스가 높을수록, 시청자는 현실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기보다 '판타지적 정의 실현'에 더 몰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려할 점은 명확하다. 드라마의 열광이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다. 대신 법을 강화하거나 체벌을 허용하면 된다는 식의 단편적 결론으로 수렴할 수 있다. 진정한 교권 회복을 위해서는 학급 규모 축소, 학부모 문화 개선, 학생 정신건강 지원, 신고 및 징계 절차의 투명성 강화 같은 다층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개인의 응징이라는 단순한 해결책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현실과 창작물의 간극 속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구조적 변화는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 원문 발췌
교권이 문제되는 세상은 맞는데 이런 폭력적인 방식의 일벌백계로 나오는 모습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법이 물렁물렁하거나 교육부가 제대로 안챙겨주니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느끼는 것 아닐까.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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