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절 학원비를 챙겨주던 할머니는 확실히 의지가 되는 존재였대요. 그 덕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데 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뒤부터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재수를 결심한 글쓴이는 가족 앞에서 뭔가 결함 있는 존재처럼 취급받기 시작했어요. 다른 가족들 앞에서 글쓴이에 대한 뒷담화가 오갔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는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대요. 대학에 합격한 사촌들은 챙기면서도 글쓴이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거죠. 명절에 폰을 잠깐 봤다고 해서 한숨을 쉬며 뭐라 하고, 누워 있으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충고를 했다고 하니까요. 1년여 동안 글쓴이는 거의 '길거리 개'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둘 다 학구열이 높으셨기에, 성적으로 정의되는 가족의 위계가 더욱 가혹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서러움만 느꼈던 글쓴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났다고 해요. 가장 힘든 시기에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한테서 받은 상처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대학에 합격했어요. 여기서 뭔가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등록금을 거하게 보내주고 "정말 수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견하다"는 말이 쏟아졌다는 거예요. 마치 뭔가를 평가하듯이, 이제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다시 챙기겠다는 뉘앙스였다고 해요. 글쓴이는 그 순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가 성적표에 달려 있다는 걸 말이에요. 합격 전의 투명인간이 합격 후 가족 구성원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죠.

할머니는 왜 재수 중엔 '힘내라'는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을까. 그 의문은 글쓴이의 마음을 자꾸 돌아가게 만들었어요. 결국 글쓴이는 할머니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가족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얼마 전 삼촌이 집에 방문했을 때 이 일이 터져 나왔대요. 삼촌은 글쓴이가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 태도를 눈치챘고, "할머니를 싫어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행동은 너무 예의 없고 어린 생각"이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 공허해졌다고 해요. 왜 자신의 감정만 '예의 없다'고 평가받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 말이에요.

그때 글쓴이는 생각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사촌오빠의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오빠의 뒷담화를 엄청 했던 일 말이에요. 그리고 자기는 그렇게 챙기지 않았던 것. 혹시 삼촌이 그 모든 맥락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 사연이 보여주는 건 단순한 가족 갈등만은 아닌 것 같아요. 바로 '조건부 애정'이 뭔지를 말이에요. 할머니의 관심이 글쓴이의 성과(합격/불합격)에 따라 180도 달라졌다는 건, 글쓴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것으로 보여요. 당사자는 이제 "나의 가치는 내가 이루어낸 성적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런 메시지를 받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에 불신을 갖기 쉽다고 알려져 있어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조건을 맞춰야만 사랑받는다'는 경험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삼촌의 충고("예의 없다")는 결과만 본 것처럼 보여요. 글쓴이가 왜 거리를 두는지, 그 원인이 뭔지는 보지 못한 채 말이에요. 오히려 글쓴이가 왜 말을 꺼내기 힘든지, 그 배경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를 역으로 드러내는 발언이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글쓴이의 엄마가 이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 거라고 봐요. 엄마는 글쓴이가 재수할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봤거든요. 할머니의 행동이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글쓴이의 거리두기를 충분히 이해하는 반응을 보인 걸 수도 있어요.

글쓴이는 스스로를 "유치하다"고 평가했지만, 사실 그건 자기보호 메커니즘일 수 있다고 봐요. 상처를 준 관계와의 거리두기는 심리적으로 필요한 과정일 수 있거든요. 무조건적인 용서와 관계 복구를 강요받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 원문 발췌

재수할때 다른 가족들한테 제 뒷담화하고 ... 투명인간 취급 ... 1년동안 길거리똥개 취급하셨어요. 대학 가자마자 등록금 보내주시고 다시 원래대로 절 대해주시더라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