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기차를 탔다. 객실이 거의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드물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예매한 자리에는 이미 군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처음 순간은 정말 어리둥절했다. 조용히 다른 자리를 찾거나, 나중에 물어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남은 자리가 수두룩했는데 자기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도 뭔가 느낀 것 같았다.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얼굴을 굳혔고,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표정이었다. 아직 뭔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완전히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게 느껴졌다.

직접 확인해야겠다 싶었다. 휴대폰으로 내 예약 정보를 다시 봤다. 표 안의 좌석 번호를 여러 번 읽었다. 분명히 맞다. 앱을 끄고 다시 켰다. 여전히 같은 번호였다.

조용히 말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미안하다는 뜻의 제스처를 함께.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더 굳었다. 마치 무언가 당한 것처럼,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뭐? 잠깐, 이건 뭔가 이상하다. 사과라고? 왜? 혼란스러웠다.

그 다음 순간이었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그 말이 정말... 예상 밖이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순간 뭔가 터질 것 같은 웃음이 올라왔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차분하게 답했다.

"제 스타일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제 자리거든요. 비켜주시겠어요?"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그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가 휴대폰을 다시 켜 자신의 예약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 기차가 뭐지?"

"무궁화입니다."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확 창백해졌다. 남자는 자신이 잘못된 기차에 탔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예매한 열차를 잘못 이해하고, 다른 열차의 표로 엉뚱한 기차에 탄 거였다. 이런 착오는 정말 흔히 벌어진다. 열차명과 호선을 헷갈리거나, 예매 당시 확인 미흡으로 인한 오류들 말이다.

남자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어색한 인사를 남긴 채 내려갔다.

후에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웃겨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따기인 줄 알고 먼저 사과했다는 게. 겨우 자리만 찾아달고 싶었는데, 그 남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던 거 같다. 이 말도 안 되는 착각이. 더군다나 별로 잘생긴 것도 아니었던지라 더더욱.


📌 원문 발췌

여자친구 있어요 / 이 기차는 무궁화인데 그 사람은 다른 기차를 예매하고 잘못 탄거야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