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로테이션과 전화당직. 이 두 가지 업무 부담을 둘 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직원의 하소연이 올라왔다. 회사 규칙상 야근하는 날에는 전화당직을 면제해준다. 대신 야근하지 않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육아단축근무를 하고 있는 동료가 자신의 당직 날을 계속 피하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글쓴이 혼자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직장인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직원에게 근무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현장에서 어떻게 메울지, 어떤 업무는 단축 대상에서 제외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주변 동료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가 생긴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야근마다 초과근무 수당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보상으로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돈이 있으니 힘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참는 것과 당연시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당이 있어도 "너는 계속 해야 한다"는 무음의 압박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육아라는 정당한 사유까지 고려해도, 전화당직 같은 업무를 회피하려는 태도였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야근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한 현재는 재택으로도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단축근무라 더 일찍 퇴근하더라도, 퇴근 이후 한두 시간 정도 당직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도와달라"고만 반복된다면, 동료는 단순한 피로를 넘어 "왜 나만"이라는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장에서 가장 큰 갈등을 만드는 구조다. 배려와 착취의 경계선이 흐릿해진다. 제도적 권리와 팀 내 최소한의 상호성은 별개의 문제인데, 그 둘이 뒤섞인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글쓴이처럼 계속 감수하다 언젠가는 폭발한다. 아니면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라는 선언 없이 애매하게 남겨두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손을 뗀 후에야, 회사 차원에서 다른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하곤 한다.

배려는 일방적일 때 결국 불공평이 된다는 점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육아단축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야근이라는 추가 부담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모두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면 회사가 더 명확한 규칙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육아단축 중에도 이 정도 업무는 분담한다"는 기준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배려가 지속 가능하고, 동료 간 감정적 앙금이 남지 않는다.


📌 원문 발췌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육아단축근무하고 있어요. 저희 회사는 돌아가면서 매일 30분정도 야근해야하는데 지금은 매일 제가 다하고 있죠. 지금은 육아단축근무하는 직원이 전화업무를 해야하는데 계속 도와달라고 합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