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신부가 경험한 일은 단순한 '요구'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정의 결정이 다른 가정의 상황을 무시하고 점진적으로 무거워지는 과정이었다.
처음은 예단이었다. 시어머니가 리스트를 정확히 작성해 건넸다. 특정 액수의 현금과 이불·반상기·은수저 같은 물품들이 적혀 있었다. 신부 가정은 형편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일반적인 합의 과정이라면 여기서 금액이나 항목을 줄이는 방향으로 흘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이불은 필요 없다면서 대신 현금 액수를 더 올렸다. 축소가 아닌 확대였다.
상견례는 더 골을 깊게 만들었다. 신부의 아버지가 표정을 굳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시아버지는 삼십 분간 '요즘 세대는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며 결혼했다고, 당연한 의무처럼. 그 자리에서 신부 아버지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신혼집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시댁 근처 아파트로 정해진 신혼집의 전세금 중 상당 부분을 신부 측이 내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이 모은 돈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신부는 자신의 적금과 친정에서 빌린 돈으로 그 차이를 메워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등기는 남편 이름으로만 올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부가 이의를 제기하자 "부부 사이에 그런 걸 따질 수 있나"는 반응이 돌아왔다. 경제적 기여도 무시하고, 법적 권리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예물도 이중 기준이 그대로 드러났다. 신부가 단순하고 가벼운 반지를 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는 "남들 보기 부끄럽다"고 하며 더 큰 것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신부 예물은 화려해졌다. 그런데 신부가 받는 예물은 시계 하나였다. 요구하는 쪽과 받는 쪽의 기준이 현저히 달랐다.
결혼식 절차도 그들의 의지가 관철되는 항목이었다. 예식장을 시어머니가 아는 곳에서 잡아야 한다. 폐백(신부가 시댁에 절을 올리는 의식)은 반드시 해야 하고, 안 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혼여행을 마친 후 시댁에 일주일을 머물며 매일 아침 밥을 준비해야 "정이 생긴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연속된 요구였다. 결혼식 전날까지, 상견례 직후부터, 계속이었다.
어느 순간 신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울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 시어머니의 대응은 신랑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저 집 딸이 벌써부터 이렇게 뻣뻣한데, 결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신랑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중간 입장이라며 신부에게만 "조금만 참으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부의 거부를 시어머니에게 전달하거나, 가정의 무리한 요구를 조정하려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신부 친정 부모님이 나섰다. 예단을 현금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항목들은 생략하기로 하는 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리는 해결이 아니었다. 결혼식 당일까지도 신부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폐백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맞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느냐"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신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됐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신랑이 그제야 그때가 잘못됐다며 미안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신부는 그 사과를 크게 와닿지 않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지난 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당시 갈등이 진정으로 해소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봉합만 됐을 뿐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쓴이는 이렇게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명절에 시댁에 가면 그때 일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다고. 몇 년이 지나도 그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 원문 발췌
결혼하고 몇 년 지나서야 그때 미안했다고 하는데 이미 다 지난 일이라 그 사과가 크게 와닿지도 않더라고요. 지금도 명절에 시댁 가면 그때 일이 떠올라서 웃는 게 잘 안 돼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