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 후 항암 준비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충분히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호출은 멈추지 않았다. 깻잎 반찬을 만들었으니 가져가라. 다음엔 동치미를 담갔으니 가져가라. 반찬 한 가지씩, 매번 다른 날에 불렀다.

이런 일이 갑자기 시작된 건 아니었다. 결혼 전부터 이미 신호가 있었다. 사귀던 100일 무렵부터 자주 만나길 원했고, 결혼 후 첫 1-2년간은 월 1-2회 정도로 시댁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정보다 훨씬 자주 갔다. 나중에 이것이 힘들다고 말했고, 방문 빈도를 줄였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호출은 형태를 달리했을 뿐 계속됐다.

시누이에게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 행사가 계속 있었다. 발레 공연, 유치원 체육대회, 여름 물놀이, 아이 전용 뮤지컬 관람. 시누이가 남편에게 주로 말씀했고, 나는 무방하다는 분위기였다. 발레 공연 때는 초대장까지 만들어서 꼭 오라고 하셨다. 선물도 준비해서 갔다. 가보니 *** 수업의 작은 공연이었다. 그것도 시간상 진행되지 않아 밥만 먹고 나왔다. 이런 식으로 작은 것들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보니, 가서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안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봄 체육대회는 그렇게 불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는 병문안도 와주시고 병문금까지 주셨다. 감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때가 문제였다. 입원한 나보다 아들의 다크써클이 심해 보인다며 걱정하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나의 엄마 앞에서도 그 얘기를 반복하셨다. 항암 준비로 힘든 와중에도 나의 상태보다 아들의 피로 정도가 더 중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나는 역시 며느리인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댁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이유가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남편은 나의 개인주의 성향을 이해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 시댉이 힘들다고 말하자 방문 횟수도 줄이고, 필요하면 혼자 가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매일 야근에 토요일까지 출근하는 와중에도 반찬 가지러 오라는 연락이 오면 혼자 시댁을 다녀왔다. 시누이의 아이 행사에도 자신이 가고 싶어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엄마 얼굴 못 본 지 오래됐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은 나를 배려하면서도, 동시에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현재 3달간 시댁을 가지 않고 있다. 전화했을 때 시어머니의 서운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너희처럼 사는 게 맞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남편이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가 보여서 시누이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 한 번 찾아갔고, 시댁에 과일을 문에 걸어두고 온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시어머니의 뜻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가족이 얼마나 자주 만나는 것이 정상인가"에 대한 문화적 기대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 성향인 나에게는 반찬 한 가지씩 다른 날에 불러내는 것도, 아파도 못 돌아가게 붙잡는 것도, 아들이 피곤하면 즉시 귀가하라고 하면서도 내 상태에는 덜 신경 쓰는 것도 모두 누적되는 부담이었다. 남편은 그 중간에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과 아내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기보다는, 이 충돌을 인정하고 우리 가족에게 건강한 거리감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원문 발췌

본인 아들의 다크써클이 심하다며 그게 걱정이라고 저희 엄마앞에서 몇번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나는 역시 며느리구나 싶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