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사는 시누이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로 올 때만 해도 상황이 간단해 보였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자연스럽게 부부가 함께 생활하게 됐다는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어느덧 2년을 지났다.

이 2년간 글쓴이가 해온 일들을 떠올려보면, '당연한 일'이 결코 아닌 것 같다는 점이 상처처럼 남는다. 따로 방을 내주고, 아침마다 밥을 챙겨줬다. 용돈이 부족할까봐 간식비를 따로 드렸다. 학생이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기려는 마음으로. 이런 배려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 습관의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설거지는 쌓아두고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릇을 방에 들고 들어갔다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통화하다가 거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는 냄비를 그대로 두고 자는 일도 있었다. 작은 일들이지만,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배려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자꾸 떠올랐을 것 같다.

무언가가 쌓여간다는 걸 느낀 글쓴이는 결국 한 번 좋게 얘기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큰 싸움을 하거나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살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생활 규칙에 대한 대화라고 본다면, 그것은 필요한 대화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렀다.

시누이가 곧바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쓴이가 자신에게 "눈치를 준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한 번의 전화 이후로 구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는 "어린애가 뭘 아냐", "네가 좀 품어줄 수는 없겠냐"는 말씀을 건넸다고 한다. 배려를 제공하던 사람이 갑자기 '책임지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찍힌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생활 습관 자체보다는 불만이 "눈치"로 재프레이밍된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인 불편함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기분이 상했다는 감정 문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배려를 제공하는 쪽이 마치 상대의 감정을 다치게 한 가해자처럼 보이게 되는 구조다. 동거라는 공간 공유는 본래 양쪽 모두의 생활 규칙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흐려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남 자식을 밥 해 먹이고 재워주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내가 나쁜 사람이 됐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 안에는 단순한 억울함만이 아니라, 배려가 당연하게 소비되고, 불만을 제기한 순간 그 모든 배려가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 일'으로 재해석되는 구조에 대한 절망감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만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묻는 "내가 예민한 건가?"라는 질문에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다. 예민함의 문제라기보다는, 동거의 기본이 무시된 것 아닌가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사는 공간에서 나눠야 할 책임과 규칙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단순한 권리 문제라기보다는 기본 생활의 문제라고 본다. 그것을 감정 문제로 뒤집고, 다시 배려 제공자에게 "좀 더 품어주면 안 되겠냐"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결국 불공정한 구조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한 번 좋게 얘기했더니 시어머니한테 올케가 눈치 준다고 일러바쳤고, 어린애가 뭘 아냐고 품어라 하셨어요. 밥 해 먹이고 재워주는데 감사는커녕 제가 나쁜 사람이 됐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