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이 된 지금도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가 결혼 결정을 했을 때, 준비 과정은 글쓴이와 엄마의 몫이 되었다. 예단을 챙기고, 폐백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상견례 장소도 직접 예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혼집 살림을 사러 갈 때도 두 번이나 따라나섰다. 결혼식이 끝난 후로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문제는 그 모든 헌신에 대해 새언니가 한 마디의 감사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는 점.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관계를 시작하는 첫 번 경험이 그렇다 보니 이후의 관계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글쓴이가 결혼식을 올렸을 때, 새언니가 보낸 축의금은 오빠 이름으로 10만 원이었다. 그것도 아쉬웠지만, 결혼식 당일의 태도는 더욱 그러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언니는 30분 정도 얼굴만 비추고는 밥도 먹지 않은 채 유치원 행사를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다. 남편도 당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글쓴이는 '그런 사람'이라며 넘어갔다.
3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환갑잔치 때는 전날 저녁이 되어서야 일이 생겼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글쓴이는 조카가 돌이 되었을 때 금반지를 선물했으나, 정작 글쓴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새언니로부터 온 것이라곤 조리원 축하 문자 하나뿐이었다. 시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새언니가 반나절만 머무른 반면, 글쓴이 부부는 밤샘을 포함해 이틀을 지켰다.
경조사마다 돌아오는 불균형. 그런데 더 문제는 엄마의 태도였다. 새언니 생일에 케이크를 보내라. 결혼기념일에 뭔가를 준비하라. 명절마다 화장품 세트라도 사줄 테니 보내라. 엄마는 끊임없이 새언니를 챙기라고 재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가 "왜 나만 해야 하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너는 손아래 입장이니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극적이었던 건 작년 추석이었다. 엄마는 글쓴이의 신용카드를 가져가 15만 원대의 선물 세트를 구매하더니 새언니 이름으로 보냈다. 글쓴이의 돈으로, 글쓴이의 이름이 아닌 채로. 돌아온 것은 "잘 받았습니다"라는 문자 한 줄이었다. 마치 남 보듯하는 감사였을 뿐이었다.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물건 수령 확인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새언니의 생일이 다가오자 엄마는 또다시 꽃과 케이크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엔 글쓴이가 선을 그었다.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 엄마의 반응은 서운함으로 가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계산적이냐"는 질책까지 따라왔다. 하지만 계산적인 게 아니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챙기지 않은 사람을 자신만 계속 챙기는 그 구조 자체가 이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조사 상호성이 여기서 작동한다. 관계에서 선물과 배려는 암묵적인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한쪽이 지속적으로 베풀고 한쪽이 받기만 할 때, 베푸는 쪽은 필연적으로 감정 소진을 겪는다는 것이 당사자들 사이의 불문율인 것으로 보인다. 그 감정 소진이 누적되면 더는 그 관계에 정성을 쏟을 수 없게 된다. 거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으로 보인다. 아, 그런데 그 지점에서 엄마는 글쓴이가 '문제'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화 중에 엄마는 목소리를 낮춰가며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참아라. 나중에 엄마, 아빠가 없으면 그 집이랑 왕래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 글쓴이의 감정 소진은 배려심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인생 전략'의 문제로 재구성되었다. 즉, 평생 손해를 보면서 불공평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더 서러웠다. 결국 엄마가 요구한 것은 자신의 딸이 영구적으로 호구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이번엔 진짜 하지 말라고 당신이 호구냐고 물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서운한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동시에 부모를 상심시키고 싶진 않은 마음. 그 두 마음이 충돌하면서 글쓴이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빠에게 말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런 건 잘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새언니는? 새언니도 "원래 표현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서"라는 말로 모든 게 정당화되어 버렸다.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항상 챙기는 사람은 글쓴이 하나였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서운함에 짓눌려야 했으니까.
명절 때마다 이 문제로 속이 상하는데, 엄마는 글쓴이가 유난을 떤다고만 생각한다. 이제는 친정에 가는 발걸음 자체가 무거워졌다. 사실 이것이 관계 강요의 역효과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도록 강요받을 때, 사람은 결국 그 관계로부터 멀어진다. 집안의 '화목'을 위해 개인의 감정을 희생하도록 압박하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오빠가 삼년 전에 결혼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언니가 우리 집 경조사를 챙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계산적인 게 아니라 삼년 동안 한 번도 안 챙긴 사람을 저 혼자 계속 챙기는 게 이상한 거잖아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