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연애 중인 남자친구의 아버지를 처음 따로 만났을 때였다. 남자친구가 먼저 제안했고,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가족 행사에서 마주칠 일이 있으니 미리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의도였다.

처음엔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남자친구의 성격이나 우리의 관계, 내 가족에 대해 물어보셨다. 대학 교수다운 차분한 목소리로 연애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는데, 그 조언들은 꽤 합리적으로 들렸다. 상대방을 계속 만날 거라면 왜 만나는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또 연애 관계에서는 한쪽이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아야 하고, 대등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여기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세대 차이도 있고,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해주는 당연한 조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화의 흐름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갑자기 과거의 일을 꺼내셨다. 아들이 젊을 때 "한 사람만 오래 사귀기보다는 여러 여자를 만나보는 게 좋다.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이셨다. "그런데 내 말을 안 들었네ㅎㅎ"라고.

불편함이 몰려왔다.

우리가 짧게 만난 사이도 아니고, 꽤 오래 연애해온 상태였다. 그런데 현재의 여자친구인 내 앞에서 왜 아들에게 '여러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던 이야기를 꺼내셨을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농담이나 가벼운 회상일 수도 있었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은연중에 '너는 임시 여친'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불편함은 그뿐만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시작해서 아버지는 계속 반말을 사용하셨다. 중간에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물어보셨지만, 그것이 불편함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니가 어머니 아버지께 어떻게 대해야 한다", "니가 먼저 이렇게 해야 한다" 같은 식의 명령조 표현이 거듭되면서, 처음부터 일종의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신혼 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려던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먼저 잘하고, 어느 정도는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방식의 표현은, 첫 만남에서 받기에는 무게가 있었다.

이상한 점은 아버지가 우리의 교제를 반대하시거나 나를 싫어하시는 것 같지 않다는 데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하셨고, 앞으로 가족 행사에 내가 참석하는 것에 긍정적이셨다. 그렇다면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해주신 건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남았을까.

자리를 떠온 뒤에도 한참을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싫어하지 않으면서도 편함 없이 대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아버지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치신 분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투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건, 호의와 무례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예민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 현재의 여자친구 앞에서 '여러 여자를 만나보라'는 조언을 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처음부터 반말을 사용하고 명령조로 '네가 먼저 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반복하는 것 — 이런 것들은 충분히 불편을 느낄 만한 발언과 태도들이었다. 심리적 부담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싫어하지 않는 사람의 호의적인 말이라도, 그것이 받는 사람에게 심리적 무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상황의 핵심인 것 같았다.


📌 원문 발췌

예전에 아들에게 "젊을 때는 한 사람만 오래 만나기보다 여러 여자를 만나봐야 사람 보는 눈도 생긴다"고 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너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을 안 듣더라ㅎㅎ"라고 말씀하셨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