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계기로 이사를 나오면서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한 누리꾼의 사연이 올라왔다. 남편 회사 위치와 새로 이사한 동네를 고려했을 때, 이전 직장까지의 왕복 통근 시간이 3시간을 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루 중 출퇴근만 반나절을 쏟아야 한다면 집밥을 챙기거나 집안일을 할 여유가 없는 상황. 여기에 남편의 일정이 불규칙해서 맞춰야 할 부분까지 있으면서, 결국 자신의 경력을 접기로 결정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선택이 주변의 시각으로는 달리 읽혔다. 시가 친척들을 만날 때였다. 시어머니가 글쓴이를 소개하는 방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못 어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직장이 없어서 집에서 쉬고 있어요"라는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쉰다는 말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데, 글쓴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장을 보고 빨래를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의 어색함이 시작점이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한두 번만은 아니었다. 남편의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글쓴이가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남편이 먼저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여러 가지를 알아보는 중입니다"라고. 기술적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 안에는 글쓴이가 하루를 쏟고 있는 구체적인 일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밥을 만드는 것, 집을 정리하는 것, 장을 보는 것, 빨래를 빨고 널고 개는 것—이 모든 것이 "알아보는 중"이라는 3글자로 통째로 압축되어 말해지지 않은 채 다음 대화로 넘어갔다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엄마는 "밥 먹었어? 뭐 하고 있어?"라고 물었다. 글쓴이가 "청소했어", "장 봤어", "저녁 준비 중이야"라고 말하면, 엄마의 대답은 "아 그래. 수고했네"로 끝났다. 감사의 말이지만, 그 감사의 순간에 어떤 가볍기가 느껴진다는 것이 글쓴이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퇴근해서 "오늘 뭐 했어?"라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한 일을 설명하려 하다가도, 뭔가 "딱 정리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냥 집에 있었어"라고 얼버무리게 되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 자신도 이상하다고 느낀다는 지점이 중요하다.

외부의 시선이 자신의 서사까지 내면화되는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을 다니던 때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라는 이름의 활동이 있었고, 그것이 급여와 성과로 계산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면 일이 증명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고 글쓴이는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음식이 그 증거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들인 것으로 보인다. 청소한 바닥은 다시 더러워지고, 빨래는 또 나온다. 끝이 없는데 시선까지 잘 가지 않는 일을 하루종일 하다 보니, 그것이 점차 쌓인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이것으로 보인다. 가사 노동이 노동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당당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이 직접 번 돈이 없으면, 그것을 "일"이라고 부르기가 눈치 보인다는 감각이 이 글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차지한다. 시어머니의 "쉬고 있어", 남편의 "알아보는 중", 엄마의 "수고했네"—이 서로 다른 표현들이 모두 같은 결과를 만든다. 가사를 독립된 활동이 아닌 어떤 임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경험이, 당사자 본인마저도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이 사연이 많은 공감을 모으고 있다는 전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집에서 아침 저녁 밥 차리고 청소하고 장 보고 빨래 돌리고 하는 게 알아보는 중으로만 처리되는 느낌. 그 사이에 내가 한 것들은 아예 설명되지 않은 채로 다음 대화로 넘어감.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