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와 함께 사는 것, 처음엔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몇 달째다. 여름 방학이라 집에 거의 매일 있는데, 그 사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점점 적응이 안 된다.
새벽 2시, 3시면 라면 냄비가 울린다. 밤새 뭘 하다가 갑자기 밥이 필요한 건지, 아무튼 그 시간대는 주방의 주인이 달라진다. 낮 2시가 이 사람의 아침인 것으로 보인다. 밤이 뒤바뀐 것 같은 일상인 것으로 보인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사라진다. "제 거 맞나요?"라는 말 한 번 없다. 설거지는 언제 하는 건지, 싱크대 옆에 자꾸만 쌓여간다.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같다. "어리니까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 마치 모든 것이 시간이 풀어줄 거라는 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를 '어려서 그렇다'는 틀로만 봐서는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이건 단순한 한 개인의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공유 공간의 규칙 설정 문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시누이가 새벽 3시에 라면을 끓일 수 있는 것, 냉장고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 설거지를 방치할 수 있는 것 —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건 안 된다"는 명확한 경계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 사람이라도 규칙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을 따르는 경향이 높다. 문제는 시누이의 나이가 아니라, 집 안의 규칙 공백인 것으로 보인다.
동거 가족 간의 생활 충돌은 거의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나이나 친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다른 사람이 당연하게 맞춰주도록 은연중에 기대하면, 그 구조는 계속 반복된다. 한 명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공간의 규칙을 먼저 정립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방학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이건 더 이상 일시적 불편이 아니다. 다음 방학에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충돌하는 패턴이 가족 관계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이 구조를 바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 맞춰줄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어려서'라는 핑계로 스스로 변하려 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참고만 있는 것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같은 답답함만 느끼게 될 뿐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히려 시누이보다는 남편과의 대화가 먼저일 수 있다. 남편이 규칙 정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함께 "우리 집의 생활 규칙"을 명확히 정하는 것. 부부가 동의한 규칙이라면, 그 다음에야 시누이도 그것을 따를 이유가 생긴다. 어린 사람이라도 집에 명확한 경계와 규칙이 있다면 존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이 상황에서 변화의 시작은 시누이의 나이나 성숙도가 아니라, 집 안의 명확한 규칙 수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부터 모든 일이 달라질 수 있다.
📌 원문 발췌
새벽 두 시 세 시에 라면 끓이는 소리가 나고... 남편한테 말하면 어리다 그러다 나아진다 이런 반응이에요. 방학 때마다 이러면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