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같은 시기가 되면 어떤 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을 찾아뵙듯이, 그곳에 가면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는 그걸 '충전'이라고 부른다. 추도식이나 공식 행사에 굳이 찾아가진 않지만, 명절 때면 조용히 앉았다 오곤 한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진다고 느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같이하는 것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말을 새기고, 행동을 응원하고, 때론 그것이 자신의 감정적 에너지원이 되는 경험인 것으로 보인다. 특정 인물에게 기대를 걸 때, 사람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 확인되길 희구한다. 그래서 역설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대가 커질수록, 그것이 깨질 때의 충격도 커진다.
한 커뮤니티 글쓴이는 세 명의 인물을 언급한다. 첫 번째는 오래전 삶을 마감한 인물. 두 번째는 최근까지 정치 무대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인품과 성품을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밝혔다. 삶의 방식을 응원한다는 표현도 썼다. 그리고 세 번째.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글쓴이는 세 번째 인물에 대해 '좋아했습니다'라고 썼다. 과거형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장을 지운다. 다시 쓴다. '좋아합니다.' 현재형. 그런데 이것도 마음에 안 든다. 다시 지운다. 몇 번을 반복한다.
이 오타와 수정의 반복에는 얼마나 많은 내적 혼란과 미안함이 담겨 있을까. 아직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마음이 깊이 상처 입은 상태다. 과거로 돌릴 수도 없고, 현재를 명확히 확정할 수도 없는 심리 상태. 이것이 바로 이 작은 동작들 속에 드러난다.
글쓴이는 "*** 때보다 형언이 안 되는 이 아픔이 무엇인지"라고 물었다. 흥미로운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마주했을 때의 분노나 실망과는 질이 다르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것은 기대가 컸던 사람에게서 오는 실망의 무게다.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대했기에, 반복되는 실망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다. 신뢰 그 자체가 깨지는 느낌으로 누적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글쓴이는 명확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번 실망을 해서 아픈 마음이 더 깊어진다"고. 여기서 핵심이 드러난다. 한 번의 실망이 아니라 반복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 실망할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계속해서 실망할 때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조금씩 닫혀간다. 기대를 걸었다가 떨어지고, 또 기대를 걸었다가 떨어지는 이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감정 자체가 피폐해진다.
이제 글쓴이는 하루를 이렇게 산다고 한다. 출근하면서 어떤 매체를 보고, 퇴근 후엔 다른 매체를 통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해서 하루를 "덤덤하게" 버틴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표현이 상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회복도 아니고, 극복도 아니다. 그저 무감각해지는 상태. 감정이 멈춰 버린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기계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캄캄한 방에 혼자 있는 것 같다고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지막에 그는 선배님들에게 묻는다. "뭘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정답을 찾으려는 진심보다는 현재의 상태 자체가 계속되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더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도 포함되어 있다.
글쓴이는 마지막에 "두서 없었다"고 미안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비논리적인 글 자체가 그가 겪는 혼란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인 것 같다. 뭔가를 바꾸고 싶기보다는, 현재의 심정을 누군가에게 증명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할지 모를, 그런 상태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했습니다' 과거형을 지웠다 다시 썻다.. 몇번을 할 정도로 *** 때보다 형언이 안되는 이 아픔은 뭘까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