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된 남매 둥이를 혼자 돌보는 일. 말로 들으면 엄청 힘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이고,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 놀아주고, 그 사이 집안일을 하고, 목욕은 남편이 주로 도와주고—일상이 그렇게 흘렀다.
하지만 일 년 가까이 매주 금요일이 되면 달라진다. 시부모님이 오시는 것으로 보인다. 금요일 저녁에 도착해 일요일 아침, 빠르면 토요일 저녁에 떠나신다. 시간으로는 하루 반에서 이틀 정도인데, 작성자는 "애를 봐준다" "도와준다"는 표현을 들으며 방문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적인 괴리가 생긴다.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오셨지만, 실제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엔 아이들 때문에 끼니를 간단하게 때웠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계신 동안엔 세 끼를 모두 제대로 챙겨야 한다. 평상시 남편이 해주던 아이 목욕, 설거지 같은 것들도 상황이 달라진다.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남편은 자기 몫을 내려놓는다. 결과적으로 작성자는 시부모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운 채 집안일을 처리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는 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주무신다. "편하라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다른 불편함들이 쌓인다. 매주 월요일이 가장 피곤하다고 느껴진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도움받았어야 할 주말이, 역설적으로 가장 에너지를 쏟은 사흘이 되어버린 셈인 것으로 보인다.
더 복잡한 감정도 생긴다. 남편은 매주 방문할 때마다 "시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신다"고, "고마움을 못 느끼는 건 너의 생각이 이상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한다. 시어머니도 방문 자체가 여행처럼 힘들다는 표현을 하신다고 한다. 아무도 방문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사실상 '도움'의 정의가 처음부터 틀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정의한 '도움'—방문하는 것, 아이들을 보는 것—이 중심이 되어 있다. 하지만 도움받는 사람의 기준은 다르다. 실제로 양육 부담이 줄어들었는가, 휴식 시간이 생겼는가, 정신적으로 편해졌는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 년 가까이 거의 매주 빼먹지 않은 방문인 것으로 보인다. 루틴화될수록 작성자는 기묘한 심리 상태에 빠진다는 의견이 드러난다. 감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 압박감, 하지만 실제로는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감정.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불만을 말할 수 없게 되는 구조다. 왜냐하면 남편과 시부모님의 시각에는 이미 이 상황이 '도움받는 상황'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혹시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의심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월요일의 피곤함, 늘어난 집안일, 남편의 부재—이 모든 것이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애를 봐준다고 오시는데 저는 그렇게 안느껴지고 월요일이 제일 피곤합니다. 제일 큰 이유는 시부모님이 오시면 평소에 애들 때문에 그냥 편하게 끼니를 때우는데 세끼를 다 챙겨야 하는 게 가장 크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