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와의 동거가 어느새 석 달째다. 시작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고 "한 달만 얌전히 있겠다"는 말이었다. 그걸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글쓴이도 '한 달 정도면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숨은 함정이 있다. 구두로 "한 달"이라고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헤어지기 어렵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기한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정확히 '언제' '어떻게' 나갈 건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그 약속은 쉽게 늘어난다. 특히 그사이 누군가는 현 상태에 적응해버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 한 달 동안 글쓴이는 애를 썼다.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밥을 챙기고, 불편한 게 없나 살폈다. 마음이 통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두 달, 세 달로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글쓴이는 지쳐가는데 시누이는 오히려 더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한다.

공간이 점점 뺏긴다

냉장고는 이제 둘만의 물건을 놓는 곳이 아니다. 글쓴이가 사온 재료들을 시누이가 확인 없이 써버린다. 시누이가 사오는 것은 드물다. 결국 매번 장을 볼 때마다 글쓴이는 시누이가 먹을 수 있는 것까지 함께 고르게 됐다. 시누이가 못 먹는 음식이 있으니 메뉴 자체를 맞춰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밥을 차려 먹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

화장실도 그렇다. 아침마다 시누이는 오래 씻는다. 원래는 부부둘이 나눠 쓰던 공간인데 이제 세 명이 쓴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글쓴이는 씻지 못하고 출근한다. 한 번은 지각할 뻔해서 화가 났는데, 그 말도 꺼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실도 마찬가지다. 퇴근해서 들어가면 소파에 시누이가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다. 자신의 집인데 자신이 방으로 들어간다. 저녁을 거실에서 보내지 않고 방에서 보내는 일이 자꾸만 늘어난다. 남편의 반응을 보면,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침식되는 것들

작은 것들이 쌓인다. 주말에 어디 가냐는 물음이 반복되다 보니 자신의 동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자기 집에서 자기 일정을 보고받는 기분인 것으로 보인다. 수도세, 전기세도 올랐다. 세 명이 쓰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도 누군가는 내야 하는 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쌓인다.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어딜 가겠어, 그냥 좀 참아"였다. 언제까지 참으란 건지는 묻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싸울까봐 그냥 넘어갔다고 전한다. 남편은 "가족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친다. 그럼 결혼한 자신은? 왜 시집 식구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건지, 그 기준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글쓴이의 심정인 것으로 보인다.

침묵이 만든 악순환

흥미로운 건 시누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신이 불편을 끼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글쓴이가 티를 전혀 내지 않았으니까. 불편함을 말하지 않을수록 상대는 현 상태를 문제 없음으로 학습한다. 글쓴이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이 상황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계가 온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집의 주인인데 손님처럼 발걸음을 재게 되고,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바로 가장 큰 문제다. 종료 시점이 없다는 것. '한 달만'은 이미 무기한으로 바뀌어 있다.


📌 원문 발췌

처음 한 달은 손님 대하듯이 신경을 썼음 밥도 잘 챙겨주려고 했고 불편한 게 없나 봐줬음 그게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면서 나는 지쳐가고 있는데 시누이는 오히려 더 편해진 것 같음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