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정과 집이 도보 15분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출산이 임박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선택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돈 문제는 충분하니, 자신이 아이를 봐주겠다는 쪽으로 할 수도 있고, 당신이 직접 키우겠다는 쪽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 결정은 글쓴이의 몫이라는 뉘앙스였다.
이건 진심 어린 제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친정엄마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가져다주는 안도감은 달랐다. 육아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울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엄마의 그 말은 '할 수 있다'는 용기도 함께 건넸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 대화를 어디선가 알게 된 후였다. 할머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곧바로 본인도 아이를 봐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갑자기 튀어나온 제안이었다. 그전까지 시어머니는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해온 사람이었다. 아이 봐주는 일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면서,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명백히 말했었다. 그 발언이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같은 입으로 '전문가이니 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 조건도 없이 무상으로 봐주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의 안색 변화는 그것이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경쟁 반응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정과 시댁 사이에서 '누가 손주를 더 잘 돌봐줄 수 있는가'라는 무언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이 상황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단순하게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내의 친정엄마도 봐주겠다고 했고, 이제 어머니도 봐주겠다고 했으니,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모르는 것은 시어머니의 과거 발언과 현재의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었다.
글쓴이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은 경쟁적 제안의 실현이었다. 시어머니가 정말로 육아에 개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경쟁심 속에서 나온 제안이 실행 단계로 넘어갈 때, 그것이 가져올 간섭과 갈등은 글쓴이가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전문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시어머니가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돌볼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들도, 겪을 수 있는 문제도 글쓴이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남편은 단순히 '좋다'고 반응했지만, 그 선택이 초래할 일상의 불편함과 부부 간의 의견 차이는 글쓴이가 먼저 감당하게 될 것처럼 느껴졌다. 친정엄마의 '어떻게 할지는 니가 정해'라는 말과 시어머니의 돌변한 '내가 봐주겠다'는 말. 같은 육아 지원이지만 그 무게감은 완전히 달랐다.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시어머니의 돌봄 제안 거절이 아니었다. 그것이 수락되는 상황이었다.
📌 원문 발췌
전에 자기는 전문가라고 애 봐주면 한 달에 2백은 받아야 된다고 했었는데, 방금 시어머니가 그말 듣고 안색 싹 변하더니 본인이 애를 봐주겠다고 그럼.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