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살 딸이 결혼식 뷔페에서 폭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의 형인 아주버님이 음식을 보며 "이거 맛있겠다" "저거 맛있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상으로는 관찰이자 감탄일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머니는 암묘적 요청으로 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주버님의 접시 옆에서 "저기 있어요"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반복되고 어머니가 움직이자, 결국 딸은 버럭 폭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가 하녀야, 내가 하녀야?" 아주버님의 아들들에게도 같은 요청을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질문이 던져진 순간, 같은 사건이 두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읽혔다.
어머니는 아주버님이 "***도 분"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한 마디는 무겁다.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문화적 예의로 삼는 지역 화법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문화권에서 자라거나 오래 살면서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겠다"는 표현은 자동으로 암묘적 요청으로 전환된다. 상대방이 알아서 움직일 것이 기대되는, 예의 바른 부탁의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이를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아주버님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존경한다는 글쓴이의 설명을 고려하면, 그 맥락에서의 순응은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 드신 어른을 위해, 그리고 남편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어머니 세대에게는 당연한 배려로 감각된다.
그런데 딸은 왜 거부했을까.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딸은 같은 표현을 다르게 읽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직접 요청 없이 상황만 설명해 타인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어떤 세대에게는 불투명한 강요로 느껴질 수 있다. 암묘적이라는 이유로 피할 수 없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요청의 구조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날 아주버님은 본인의 자녀들(딸의 사촌)에게도 똑같이 음식을 권하고 있었다. 딸의 눈에는 이것이 단순한 배려나 예의가 아니라, 위계 관계에서 비롯된 역할 기대, 즉 무언의 봉사 강요로 느껴졌을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입장도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일년에 몇번이나 있다고"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어머니는 이를 매우 가끔 있는 일로 본다. 매일 밥을 떠다드리는 게 아니고, 어쩌다 한두 번 정도라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면 맞춰드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심리가 저변에 있다. 어머니는 자신도 귀찮지만 참고 움직이는데, 왜 딸은 이렇게까지 거부하는가—이것이 어머니의 진정한 고민처럼 읽힌다. 어머니 세대에게, 친척 어른을 위해 무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예의이자 인정받는 행동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딸이 받은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왜 우리가 갖다드려야 하는가. 왜 직접 말씀하지 않고 우리가 눈치를 써야 하는가. 왜 우리의 의지와 동의는 중요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이 딸의 거부 뒤에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남편(아버지)은 딸을 혼냈다. 어머니는 현재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한쪽은 "어쩌다 한 번인데 왜 거부하나"라고 묻고, 다른 한쪽은 "왜 나에게 역할을 강요하나"라고 답한다. 이 갈등의 핵심은 누가 버릇없고 누가 옳으냐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읽는가, 각자에게 당연한 것과 거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세대 차이의 문제로 읽힌다. 어머니 세대에게 당연하던 간접 요청과 무언의 역할 기대가, 요즘 세대에게는 답답함과 위계적 강요로 느껴지는 구조인 것 같다.
📌 원문 발췌
음식 떠오니 아주버님께서 접시를 보시며 이거 맛있겠다 저거 맛있겠다 하십니다. ***도 분이시고.. 저 말 뜻은 결국 자기 접시 이거 채워서 떠와라 이겁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