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정책은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그렇기에 대사회적 해악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의미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다 예기치 않은 다른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이 추진한 한 언어 순화 정책이 바로 그런 사례로 꼽힌다.

당시 논쟁의 중심에 있던 것은 '소보로빵'이었다. 소보로는 일본어 そぼろ(곱게 볶은 고기나 생선)에서 비롯된 외래어였고, ****의 왜색 제거 정책 대상에 포함되었다. 2000년대는 한국 사회가 일제강점기 유산과 한계를 정산하려는 심리가 여전히 강했던 시기였다. 방송 금칙어부터 시작해 일상 언어 속 일본 유래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던 때였고, ****도 이런 사회적 요청에 응하는 차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 제안은 이렇게 나왔다고 전해진다. 소보로빵을 '곰보빵'으로 부르자는 것이었다. 왜색 표현을 없애고 순우리말로 순화한다는 취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민족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익명 게시판에 이 정책이 소개되는 순간 적지 않은 반발이 터져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즉각적인 의문과 조롱이 오갔다. "왜색 표현이 싫다며 없애더니, 다른 차별 표현으로 바꾼다는 건가"라는 지적이 올라왔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그럼 모카 초콜릿도 비슷한 이름으로 부를 건가, 다른 빵들도 신체 특징으로 부를 건가"라며 풍자하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시판 반응은 거의 일관되었다. 좋은 의도가 완전히 엇나간 정책이라는 평가였다.

'곰보'라는 단어 자체를 들여다보면 이 비판이 적확함을 알 수 있다. 곰보는 천연두나 여드름 흉터 등으로 얼굴에 움푹 들어간 흔적이 남은 사람을 가리키던 우리 전통 표현이었다. 신체적 특성을 부정적으로 낙인찍고, 그것을 사람의 정체성 삼아 부르는 차별 언어였다. 단순한 별칭이 아니라 신체 조롱의 역사를 담은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색 외래어를 제거하려던 명목이 역사적 차별 표현의 부활을 초래한 셈이었다.

이 일화가 오래도록 회자되고, 여전히 온라인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언어 정책의 근본적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없앨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자리에 들어올 표현이 사회적·역사적으로 타당한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외래어 정책도 중요하고, 차별 표현 순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기준을 추구하다가 다른 기준까지 손상시키지는 않는지, 과거의 차별을 무심코 되살리지는 않는지를 더욱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원문 발췌

****는 한 때 소보로빵을 곰보빵으로 부르자 한 전적이 있다. 왜색표현이 싫으니 약자를 조롱하는 표현으로 대체하자고?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