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한국의 많은 집에서 반복되는 한 장면이 있다. 거실에서 부채질을 하는 부모의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에어컨은 멀쩡히 벽에 붙어있고, 온도계는 30도를 넘지만 선풍기는 켜지 않은 상태다. 자식 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막막해진다. 더우면 틀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견뎌내려 하는 건가.
한 커뮤니티 게시글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단순히 한 집의 개인사가 아니라 특정 세대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반응이 많다. 그 글쓴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극단적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않고 그 돈을 모아서 에어컨을 켜는 데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용돈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좀 틀어 달라"고 간청했다는 것. 그런데도 부모의 반응은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정도는 아직 덥지 않은 거 같은데" 또는 "나중에 더우면 그때 틀지" 같은 식이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더 놀라운 건 뭐냐면, 자식이 비용을 전담하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내가 사준 거니까 내가 나중에 떼가면 되잖아"라는 논리까지 펴봤지만, 돌아온 건 "불효스럽다"는 핀잔뿐이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어쩌면 이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세대가 학습한 어떤 다른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언론은 집중적으로 '에어컨의 무서운 전기료'를 보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글쓴이도 그 시대에 그 메시지를 내내 받으며 자랐다고 회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어컨 한 대가 선풍기 30대의 전기료를 낸다는 류의 뉴스들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메시지가 특정 세대의 무의식에 깊이 박혔다는 게 중요하다. 당시엔 가정 예산 관리가 중요했고, 에너지 절약도 국가 차원의 과제였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부모 세대는 "에어컨을 사용한다 = 낭비한다 = 불효다"라는 등식을 마음 깊은 곳에 암암리 갖고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무의식이 이성적 판단을 앞선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실제로 덥다는 감각이 있어도, 뇌는 선풍기를 켠다. 자식이 "전기료는 내가 낼 테니까"라고 해도, 조건반사처럼 "그럼 안 돼"라고 거부한다.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직접 구매한 에어컨까지도 거리를 두고 대한다. 그것을 봐서는, 에어컨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에어컨을 턴다는 행위' 자체가 이들에게 갖는 심리적 무게가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가 충돌하는 지점이 여기다. 아래 세대는 "더우면 틀면 되지"라고 간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위 세대는 그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마치 가족의 미래를 저당 잡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혹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세대적 가치관, 즉 "어려운 시절을 견디는 것이 미덕"이라는 신념과도 충돌한다. 그러니 "불효스럽다"는 핀잔이 나오는 것 아닐까. 자식의 효심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효심 자체가 자신의 세대적 자존심을 흔드는 것 같아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건, 부모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그 약속인 것으로 보인다. "8월 되면 틀 거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8월이 와도 에어컨은 꺼진 채라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집 거실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부모를 설득하려다 포기했던 자신의 여름날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이 풍경은 결코 한 집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 원문 발췌
진짜 참다 참다 내가 이번 달에 아이스크림을 안 사먹고 그 돈 주고 갈게 좀 트십시다. 저거 안 틀거면 어차피 내가 사준 거니까 내가 확 떼간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불효막시무스 소리만 듣지.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