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딸이 마치 복사기로 찍은 듯 닮아 있었다. 출생 직후부터 시댁은 환호했고, 시아버지와 남편도 외모가 거의 같아 딸을 보면 '미래의 남편'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아이가 나이 들면서 시작됐다. 동네를 다닐 때마다 누군가는 "아빠하고 똑같네"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엔 단순한 관찰이었을 테지만, 유치원생 딸에겐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 아이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을수록 점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외모 비교가 자기의 정체성 평가처럼 느껴진 것이 아닐까.

몇 주 전 주말, 시댁의 이웃 분이 아이를 보더니 기선제압적인 말을 흘렸다. "못난이 왔구나", "아빠 판박이네", "할아버지, 아빠, 애까지 어떻게 그렇게 똑같아" 등등. 한 번에 여러 말이 쏟아졌고, 마무리는 "엄마를 닮아야 했는데"라는 아쉬움 같은 톤이었다고 한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가 무너졌다. 울고, 소리 지르고, 뒹굴었다. 글쓴이가 옆에서 봤을 때 아이는 단순히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다고 느낀 것 같았다.

아이를 침대에 눕혀 재운 글쓴이가 거실로 나왔을 때, 시댁은 조용히 다른 말을 꺼냈다. "아이가 외탁한 것 같네." 아이를 위로하는 말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편집'하려는 뉘앙스였다.

그 말을 계기로 시댁은 신혼식 사진 원판까지 꺼냈다. 몇몇 친척을 가리키며 "이 사람들이랑 닮았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글쓴이의 육촌들과 육촌의 엄마였다. 그들은 대체로 통통한 체형이었고,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글쓴이는 그때 시댁이 하는 말의 뒷의도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가 못생겼다는 평가를 자신들의 혈통에서 빼내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부위별로 '외가의 특징'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마치 팩트처럼 정렬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길은 계속됐다. 근처 식당에서 주인 아저씨가 또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고, 아빠고 아이고 똑같이 생겼네요. 할아버지랑은 더 똑같네요." 아이는 또 울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는 급히 "아니에요, 우리 손녀는 외탁했어요"라고 했고, 사장님은 "엄마는 날씬하고 예쁜데, 아이는 정반대네요"라는 말을 더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시댁의 말들이 순수하게 '아이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 아이가 상처받으니까 '외탁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말로 위로한다고 하지만, 정말은 '못난이라는 평가가 우리 혈통 때문이 아니다'라는 자기들의 입장을 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기분 나뻤다. 누군가는 아이를 안아주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줘야 하는 순간인데, 어른들이 혈통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글쓴이는 아이와 함께 방에 들어가 물었다. "엄마랑 어디가 똑같은지 찾아볼까?" 아이는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그 과정 속에서 글쓴이가 아이에게 말해주려던 건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는 ***씨 성을 가졌고, 아빠는 ***씨 성이지만, 이 아이도 엄마처럼 날씬하고 예쁜 ***씨라고. 누군가 아빠를 닮았다고 해도, 엄마의 피를 받은 또 다른 버전의 자신이라고.

그런데 어른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많아서, 그 위로의 목소리가 묻혀갈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외모 비교, 혈통 게임, 자존심 보호. 모든 게 한 아이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글쓴이의 그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 같다.


📌 원문 발췌

못난이 왔구나. 커갈수록 아빠 판박이네. 할아버지, 아빠, 애까지 어떻게 저렇게 똑같나 몰라.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