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앉은 11살 아들, 그리고 부모 A와 B. 평범한 저녁 식사였다.
후에 B가 A를 향해 제기한 한 가지 지적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갈 일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신 식탐이 있어요"라는 말. 세 가지 구체적인 장면들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첫 번째. 양념게장
A는 음주 중이었다. 원래도 천천히 먹는 성향인지라, 술 한 잔과 함께하는 식사는 더더욱 여유로워 보였다. 양념에 절인 게장을 차근차근 집어 밥 위에 올리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옆에서 보던 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게장을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A가 수저로 한두 번 살을 떠 아들 밥 위에 얹어주자, 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A도 먹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엄마가 좀 먹어야 해"라고 말하며 손을 멈췄다. 거절이 아니라, 경계선을 긋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야끼소바빵
아들이 유독 좋아하는 이 빵을 장만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개를 샀다. A의 것 하나, 아들 것 하나.
첫 개는 어제 다 없어졌다. 오늘 하원 뒤 아들이 물었다. "남은 빵이 있어? 저녁에 야식으로 먹고 싶은데." A가 반개를 잘라주고 곁에 과일도 챙겨주었다.
"더 먹고 싶어"라는 아들의 두 번째 청이 들렸다. A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맛을 못 봤지만 괜찮아, 다 먹으세요"라고 양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아들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빠, 미안해. 적어도 한입은 맛봐야지." 아이의 말이 순진했고, 미안한 마음이 묻어났다. A는 남은 반쪽에서 가장 맛있을 중앙 부위, 약 1cm 너비의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아들에게 건넸다.
세 번째. 라면
A의 그릇에는 라면 국물이 담겨 있었다. 젓가락에는 면이 고소롭게 흔들렸다.
아들은 밥을 먹고 있었지만, A의 그릇 쪽으로 자꾸 눈이 갔다. "라면 한 입 먹고 싶어"라고 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A는 젓가락으로 면을 걸어 아들에게 갖다 줬다.
"한 번 더"라는 두 번째 요청도 받았다. A는 다시 갖다 줬다.
세 번째 요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엄마도 먹어야 하니까"라고 말하며 그릇의 입구에 젓가락을 모았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신호였다.
'식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온라인 익명 게시판의 한 글 쓴이가 던진 질문은 단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게 식탐인가요?"
남편 B의 지적 근거도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장을 더는 못 먹게 했고, 빵에서 맛있는 부분을 먹었으며, 라면도 결국 안 나눠줬다는 것들.
그런데 '식탐'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식탐은 통상적으로 남의 음식을 욕심내고 탐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자신의 몫을 지키는 행동과는 다른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세 장면을 다시 훑어보자.
첫 번째에서 A는 자신의 게장에서 일부를 떼어 아들에게 주었다. 타인의 것을 뺏은 게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에서 A는 자신의 반개 빵에서 1cm만 남겨 먹고 나머지를 양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의 대부분을 아들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에서도 A는 처음 두 번은 라면을 나눴다. 세 번째에서만 거절했는데, 이것이 진짜 탐욕스러운 행동일까, 아니면 본인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경계일까.
11살, 그리고 부모의 '경계'
이 사연이 웹 커뮤니티에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봤을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까. 아니면 부모도 자신의 몫을 지킬 '먹을 권리'가 있을까.
11살이면 이제 "이건 내 몫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자신의 음식의 일부를 나눈 후, "더는 못 주겠다"고 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양육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 가지 장면 중에서, 어느 것이 진정한 '식탐'이라고 봐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진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원문 발췌
A가 맛도 못봤지만 괜찮으니 다 먹으라함. 아들이 미안하니 한입이라도 맛보고 주라고함.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