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알린 순간부터 달라진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친정 동생은 거의 광파열처럼 반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 태어날지, 아들인지 딸인지 묻고 싶어서 안달하고, 카톡으로 거의 매일 연락이 오고, 뵐 때마다 배를 만져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50만원을 보내더니 출산 준비금이라고 했고, 돌반지를 위해 따로 저축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입덧이 심할 땐 지방 서울 오가며 정말 많이 챙겼다.

한 번은 술 마신 뒤 전화를 걸어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논하고, 뱃속에 열 달을 누가 어떻게 견디느냐며 감탄하고, 아기가 자신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소망까지 터뜨렸다. 시동생은 어땠나. "축하한다"는 인사와 10만원 정도의 선물이 전부였다.

시댁에 가볼 때마다 시부모님은 자꾸 "우리 쪽은 뭐 해주나"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친정 동생이 정말 좋아하고 벌써부터 난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시부모님이 나지막이 한 말, "친조카랑 외조카는 다르지. 친조카가 더 이쁘고, 친손주가 이쁘지. 친사촌끼리 더 친하게 지낸대"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뭔 뜻인지 어려웠다. 같은 형제자매가 낳은 아이들인데, 뭐가 다르다는 건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적 부계 중심 혈통 논리가 떠올랐다. '친조카'는 남편 편 형이 낳은 아이, '외조카'는 아내 편 형이 낳은 아이를 뜻한다. 성씨가 이어지는 혈통과 그렇지 않은 혈통을 갈라 서열을 두는 건데, 시부모님의 말씀은 정확히 그 논리였다. 성씨를 물려받을 아이가 더 이쁘다는 건데, 이게 정말 이 시대에 여전히 통용되는 잣대인가 싶었다. 실제 가까움이나 정서적 유대, 그리고 육아 참여도와는 무관하게 혈통만으로 순서를 매기는 논리다.

작성자는 되받아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씨 때문에 더 이쁘다면, 열 달을 뱃속에 품고 키운 내 아이가 더 이쁘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가장 이쁘게 여기듯이, 열 달의 시간과 고통을 담은 관계가 가장 각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성이 같다, 다르다는 기준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유대 아닌가.

그런데 시댁의 온정을 보는 방식이 바뀐 건 그 발언 이후였다. 입덧이 심할 때 시부모님이 챙겨주신 음식을 보면 대부분 남편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입덧 때문에 못 먹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나중에 먹으라고 하셨다. 그나마 챙겨주신 건 아기 용품 몇 개뿐이었다. 친정은 어땠나.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주셨고, 누워서 쉴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그리고 아기용품을 사라고 그 돈을 주셨는데, 그 액수가 시댁에서 준 물건 열 개는 사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한두 가지 음식, 한 끼의 맞춤형 도움 같은 디테일에서 돌봄이 갈린다는 걸 실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질의 규모만이 아니라 배려의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시댁에선 초음파 사진을 보고 "저 닮았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시댁 사람들만 닮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머리 크기도 마찬가지였다. 시댁 쪽 가계에서 비롯된 특징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잘해주는 시댁이 없다"고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로 자신이 받은 건 무엇인가. 남편 위주의 음식, 아기용품, 그리고 "살 빠졌네", "피부 푸석해졌네" 같은 걱정 아닌 걱정뿐이었다. 친정은 달랐다. 아이를 낳을 며느리를 배려했지, 아들을 위한 며느리로만 본 게 아니었다. 시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친손주"라는 표현 안에는 실제로는 "우리 아들의 아이"라는 의미만 들어 있고, 며느리 자신은 그저 그 아이를 낳아줄 도구일 뿐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원문 발췌

친조카랑 외조카랑은 다르다 친조카가 더 이쁘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