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관계에서 시어머니의 태도 변화를 둘러싼 이야기다. 작성자에게는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이(위)와 현 남편과의 아이(아래) 두 명이 있다. 결혼 초기에 충분히 설명했고 시어머니도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처음엔 시어머니가 두 아이를 구분 없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충분히 귀여워해주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변화는 서서히, 하지만 점점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래 아이(친손주)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의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반면 위 아이에게는 점차 무심해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상황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 명절인 것으로 보인다.

용돈으로 비교하면 된다. 명절마다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의 금액이 다르다. 아래 아이는 5만원, 위 아이는 1만원. 그것도 반복적으로. 같은 명절, 같은 자리에서. 단순히 성의의 차이라고 보기엔 그 격차가 너무 크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인지하게 될 거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차별이라는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문제다. 시어머니가 친손자에 대한 더 강한 애정을 가지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일 수도 있다. 혈연 중심의 심리는 의식적으로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다. 그 마음 자체를 지우라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작성자도 이를 안다.

문제는 그다음인 것으로 보인다. 그 감정이 아이 앞에서, 그것도 반복적으로 수치화되어 드러나는 방식이 문제다. 5만원과 1만원이라는 금액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도록 만드는 메시지다. '나는 할머니가 덜 사랑하는 아이', '나는 사실 이 가족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으로 천천히 자리 잡힐 수 있다.

남편의 태도도 구조적인 문제를 만든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한다. '어머니 입장에서 어쩔 수 없지 않냐'는 게 남편의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혈연에 기반한 감정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명확하게, 반복적으로 차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감정과, 그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은 다르다. 감정은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행동은 선택의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가 위 아이에게도 같은 금액의 용돈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차이를 두면서까지 그것을 아이 앞에서 노출할 필요는 없다.

작성자가 남편에게 이를 설명하려 하면, 남편의 대답은 늘 같다. '예민하게 굴지 마.'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크게 생각하지 마'라는 뜻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이 문제를 제기하는 자체가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결과 작성자는 고립된다.

시어머니와 직접 대면하기도 어렵다. 남편은 중재자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작성자는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사이를 오간다.

명절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시어머니는 같은 방식으로 차별하고, 남편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달라고 한다. 이 반복의 끝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보이지 않는다. 차별이 문제라기보다, 그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받으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척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더 큰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시어머니의 감정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고도는 침묵의 구조 자체일 수 있다.


📌 원문 발췌

어쩔 수 없는 건 이해해요 근데 그걸 이렇게 티나게 드러내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