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사연. 시모와의 통화를 우연히 들은 누리꾼이 겪은 일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받은 전화였지만, 다른 공간에 있던 글쓴이도 귀를 기울일 필요 없이 들렸다. 시모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통화에서 남편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가 고기랑 반찬을 잔뜩 챙겨주셨어요." 소탈한 보고였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시모가 물었다. "장모가 혼자 사왔더나?"
이 한 마디에 글쓴이가 기분이 상한 것은 자연스럽다.
호칭의 무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에는 사돈(남편의 부모)을 칭할 때 "사부인", "사돈댁", "빙모" 같은 존칭이 따로 있다. 이런 호칭들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한다는 신호다. 그런데 시모가 호칭을 낮춘 것만 아니라, "사오셨나", "오셨나" 같은 존댓글까지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제3자 입장에서 이를 들었을 때의 불쾌감은 충분하다. 자신의 부모가 무시당하는 느낌. 그것도 배우자의 귀에까지 들리는 상황에서. 글쓴이는 그 순간 "내 부모가 낮춰 불렸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직접 받은 말은 아니지만, 제3자로서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글쓴이를 더 화나게 한 것은, 그다음 남편의 태도였다.
남편은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럴 수 있지 않으냐"고 변명했다고 한다. 마치 예절 없는 말이 나이의 탓인 양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모는 남편보다 겨우 네 살이 많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세대에 가까운 나이인데 "나이 탓"이라는 설명이 미덥지 않다. 호칭과 존댓글을 빠뜨린 것이 세대 차이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예절을 무시했거나 상대를 낮춘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더 깊은 갈등의 지점은 여기다. 배우자가 편을 들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모가 무시당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남편이 글쓴이의 입장에 서주지 않았다. 대신 시모를 옹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이 탓"이라는 한 마디로 상황을 덮어버렸다. 배우자의 편이 자신에게 없다는 신호.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확인. 시모의 무례 자체보다 남편의 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글쓴이의 진짜 고민인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처음엔 "나이 탓", "그냥 그런 성격",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같은 말로 넘어간다. 하지만 배우자의 부모 관계에서 계속 무시당하고, 그때마다 배우자가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배우자가 "나의 부모를 폄하하는 행동을 기꺼이 용인한다"는 뜻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글쓴이는 마지막에 묻는다. "제 눈앞에서 주고받은 말이 아니니까 참아야 하나요?"
간접적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 귀에까지 들릴 만큼" 크게 발화된 말이라는 점에서, 글쓴이가 받은 불쾌감은 더욱 정당하다. 참는 것이 능사가 될 수 없다. 배우자의 부모 관계에서 무시당했을 때, 배우자의 응원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불쾌함을 더 깊게 박아넣는다. 호칭 예절은 작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적인 시댁 관계의 기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 원문 발췌
사돈댁, 사부인 등 온갖 단어가 많은데 제 부모님 낮춰불렀다고 생각하고, 사오셨나, 오셨나 같은 존칭을 안 써서 기분 더러웠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