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도 어김없이 조카 얘기가 나왔다. 처음엔 당연하게 용돈을 건넸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대화가 흘러나왔다. 학용품이 필요하진 않을까. 요즘 아이들 준비물이 많지 않냐는 식의 물음이었다. 직접 "사다 줄래?"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느낀 건, 뭔가 해줘야 한다는 기대. 아직 말로 꺼내지 않은 것 같지만, 분위기는 이미 그걸 원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부턴 이렇지 않았다. 처음엔 진심으로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조카를 보면 반갑고, 명절은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니 작은 용돈으로 기쁨을 나누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같은 행동이 반복되니 뭔가 달라졌다. 매년 그 시점이 오면, 상대방의 기대는 자동으로 커진다는 느낌이 든다. 명시적인 요청 없이도 '올해는 어떻게 할 거냐'는 무언의 신호가 떠다닌다. 그 신호를 읽는 순간, 이제 이건 내 선택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예상된 행동처럼 보이게 된다.

처음엔 명절 용돈이었다. 그게 반응이 좋으니 매해 반복됐다. 반복이 쌓이는 사이, 어느순간 그건 '당연함'으로 변한 것 같다. 마치 오래전부터 하던 것처럼. 올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학용품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누군가 요청한 건 아닌데도. 하지만 저 사람들이 바라는 게 이제는 용돈 그 이상이라는 걸 감지하는 순간, 거절이 점점 어려워진다. 초반의 선호의에서 시작한 행동이 어느샌가 '해야 하는 의무'로 변형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선을 그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거절했을 때 깨질 관계의 무게를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찍힐까. 자신의 자식을 차별하는 인척 취급받을까. 명절마다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관계인데, 그렇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기대는 계속 커진다. 이건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불안감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 불안감 앞에서는 경제적 형편따위는 뒷전이 된다.

선을 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상대를 꼬집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명시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으니까. 분위기를 만든 것도 한 사람의 의도가 아니고, 이 과정 전체가 마치 자연스러운 관계의 흐름처럼 작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구조 자체가 '반복이 습관이 되면 당연해진다'는 인간관계의 법칙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선을 긋는 방법은 태도의 변화로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올 명절엔 다르게 행동하겠다는 조용한 결정. 그리고 그 변화에서 나타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 그것이 이 관계의 실제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테니까.


📌 원문 발췌

명절마다 조카한테 용돈 주는 게 당연해졌는데요. 직접 달라는 말은 안 하는데 그 분위기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지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