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맞벌이 아내인데, 시댕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은 글인 것으로 보인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1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 글쓴이가 마주친 '의무의 격차'를 보면 얼핏 올케의 태도가 무심해 보인다.
글쓴이의 남동생과 결혼한 올케는 지난 4년간 시댕 방문이 극히 드물다. 연 1~2회 정도 와서 밥을 먹고 떠나는 정도다. 명절이나 시부모님 생일 때도 마찬가지. 선물은 택배로 챙기지만 직접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전화는 이따금 하는 편이라는데, 평소 연락을 통해 챙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글쓴이의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자신은 어떤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명절과 시부모님 생신에는 직접 시댕에 가서 뵌다. 그 과정에서 정성을 들인다. 올케와 글쓴이는 모두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시댕 관계에 들이는 에너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글쓴이의 피로감이 읽힌다.
이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올케는 결혼할 때 친정에서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집과 차. 반면 글쓴이 부부는 시댕에 예물을 보내는 방식의 결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비 속에서 글쓴이가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해 본다. 경제적으로 든든한 친정이 여느리의 '협상력'을 결정한다는 생각 말인 것으로 보인다. 시댕의 눈치를 보거나 의무감으로 챙겨야 한다는 압박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글쓴이가 정말 화낸 대상은 올케인가. 글의 표면은 '올케가 시댕 도리를 안 한다'는 비판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읽으면 다르다. "나는 왜 못 그러나"라는 자조가 밑에 깔려 있다. 시댕 관계의 구조 속에서 글쓴이가 느끼는 건 올케의 자유로움에 대한 부러움이자, 자신이 느끼는 선택의 여지 없음에 대한 답답함인 것으로 보인다. 올케가 '잘 못 해서' 화난 게 아니라, 그 '잘 못함'이 가능한 조건 자체에 갇혀 있는 자신의 상황을 비추는 거다.
이 글이 올라온 배경도 구체적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그 날 퇴근 후 시댕에 가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 생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며느리이면서도 왜 이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아침부터 자기도 모르게 계속 올라온 것 같다. 올케가 택배로 보내고 쌩 있는 그 시간에, 글쓴이는 퇴근길 피로를 안고 시댕 차로 향하고 있다. 그 대비가 주는 막막함이 글 전체를 관통한다.
글쓴이가 던지는 질문은 가혹해 보인다. 잘사는 집 딸들은 정말 시댕 눈치를 하나도 안 보고 살까. 그렇다면 그건 올케의 성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친정의 경제적 지위가 만들어내는 '자유도'의 문제 아닐까. 이런 구조 속에서 며느리의 의무감은 누가 더 얼마나 느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은 결국 가족 구조의 불공정함을 향한다.
글쓴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올케와 같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시댕 관계 자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게 아니게 하는 것일까. 글 말미의 피로와 박탈감은, 결국 올케의 행동보다는 "나는 왜 못 그럴까"라는 무력감에 가깝다.
📌 원문 발췌
1년에 한두번 시댁에 와서 밥만 먹고 쌩하니 가버리구요. 시부모님 생신, 명절에도 선물이나 택배로 띡 보내고 얼굴 안 비춥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