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며느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작 무엇을 어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시댁에서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호칭이었다. 본인은 남편을 부르는 방식으로 이름의 끝글자를 따서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예컨대 ***라면 "***가 뭐래"와 같이 부르는 식인데, 친정에서는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친정 부모는 본인의 남편이 같은 방식으로 본인을 부르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그런데 시댁의 반응은 달랐다. 남편을 그런 식으로 부르면 안 된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이 물었다. "우리 남편도 제 부모님 앞에서는 저를 그렇게 부르는데요. 남편이 먼저 고치면 저도 고치겠어요."
다음으로 나온 지적은 호칭의 표현 방식이었다. "저희 엄마"라고 말할 때 "친정"이라는 단어를 붙여 "친정엄마"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다시 질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시어머님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친가엄마' 같은 단어를 붙이지 않는데요? 저는 왜 다르게 해야 하나요?" 시댁에서는 그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세 번째 지적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을 때의 인사말이었다. "여보세요"라는 일반적인 인사도 안 되고, "네, 어머님"이라고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로 본인은 시어머니의 전화가 오면 그냥 "네~"라고만 대답하게 됐다.
세 가지 지적을 놓고 보면 패턴이 보인다. 본인의 남편은 친정에서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호칭을 쓴다. 친정에서는 아무도 남편의 호칭을 지적하지 않는다. 남편도 본인의 이름을 끝글자로 부르고, "우리 엄마"라고 표현하지만, 그에 대해 누군가 "고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호칭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호칭 방식이 정말 중요한 예절이라면, 그것은 며느리뿐 아니라 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작동하는 기준은 '며느리라는 신분'인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추가적인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안 듣는다"는 평가가 억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인은 반항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기준을 요구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당신도 하는데 왜 나만 다르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말을 안 듣는 것"으로 해석되는 순간, 더 이상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순응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순응이 정당하지 못해 보인다.
📌 원문 발췌
***도 제 부모님 앞에서는 제 이름 부르는데요. ***가 고치면 저도 그렇게 할게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