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소의 시위 현장을 보고 있던 한 시민이, 순간적으로 80년 전의 극도로 어두운 역사를 떠올렸다고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MBC 보도를 보면서 그는 무언가 섬뜩한 것을 느꼈다.

그 현장에서 들린 단어는 "빨갱이"였다. 이 단 한 마디가 글쓴이를 과거로 끌어갔다. 1940년대 후반, *** 지역의 *** 사건 당시 벌어진 극우 청년 집단의 만행들. 특히 그때 활동했던 ***청년단이라는 극우 조직의 폭력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역사가 떠오르는가. 그때의 폭력이 어떻게 대규모로 정당화될 수 있었는지를 알면 이해가 간다. *** 사건은 해방 직후 한반도가 심각한 이념 갈등에 휩싸여 있던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극우 청년 조직들은 상대를 "빨갱이"로 낙인 찍는 것을 폭력의 기초로 삼았다. 한 번 그 낙인이 붙으면 무엇이든 정당화되었다. 집단 폭행, 모욕, 살인까지도 "위협으로부터의 방어"라는 명분 아래 도덕적 저항 없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당시 대다수 조직원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행동이었다는 점이 더 무섭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났다. 하지만 같은 언어, 같은 논리가 현대의 투표 현장에서 다시 울려 퍼진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라는 말의 기능은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그 낙인을 씌우는 순간, 그들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된다. 상대의 입장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 적을 타파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가 된다. 이 구조 속에서 폭력은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떠오른다.

글쓴이의 질문은 깊이가 있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미쳐있게 만들었을까?"

집단이 광기에 빠진다는 것은 광신도 소수가 일으키는 현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개인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점진적으로 빠져드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불안감이 고조되었을 때, 같은 수사가 반복되고 증폭되면 개인의 판단력과 분별력은 급속도로 마모된다.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이를 광기라고 느끼지만, 구성원 대부분에게는 그것이 필요한 조치, 정당한 대응으로 느껴진다. 바로 여기에 역사의 반복이 가장 위험한 이유가 숨어 있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 1건을 통해 제기된 이 물음은, 이념과 낙인이라는 언어가 집단 심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폭력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드는지를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놓는다. 문제는 이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제주 *** 사건이나 ***청년단의 만행들이 떠오릅니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미쳐있게 만들었을까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