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만 해도 시사 방송은 매우 다른 풍경이었다. 작가들이 작성한 대본을 그대로 읽는 형식이었고, 마치 종교 집회의 설교를 듣는 듯한 일방향적 성격이 짙었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리듬은 규범적이고 정해진 형식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시청자들은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대 후반, 기존의 방송 관행을 깨는 진행자들이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잡놈' 같은 자조적 표현을 쓰며 업계의 불문율을 무너뜨렸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시사 콘텐츠가 딱딱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예능의 재미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시사 프로그램들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방송국이라는 기관의 권위가 아니라, 진행자 개인의 신뢰성과 역량이 콘텐츠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평가다.
그런데 아직도 기존 언론 출신의 진행자들이 진행하는 방송을 보면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이들은 '중립'을 명분으로 관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점을 숨기기 위해 불필요하게 복잡한 표현들을 여러 겹으로 쌓다 보니, 오히려 핵심 내용이 청중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중립이라는 명목 아래 전달력을 포기한 셈인데, 이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는 쉽게 간과된다.
말을 끊는 행위가 무례하다는 비판은 자주 제기된다. 그러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의 실력을 고려하면, 이 비판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이들은 충분히 깊이 있는 사람들로 평가받으며, 자신의 영역에서는 거의 무한정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지식과 논리는 풍부하지만, 그 풍부함이 언제나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진행자의 개입, 특히 말을 끊고 다시 정리하는 행위는 여기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적 언어로 꽉 찬 설명을 청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복잡한 논리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진행자의 진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례함이 아니라 편집 능력의 발휘라고 할 수 있다. 진행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때, 그 개입은 전문가의 말을 살리면서도 청중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오는, 무분별한 말끊기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진행자의 자기중심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진짜 편집 기술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을 끊는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끊음이 어떤 목적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진행자가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관점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언어의 장벽을 여러 겹으로 치면서 내용이 전달되지 않다보니 중립이 문제가 아니라 도달하지 않는 문제가 자꾸 발생한다. 그들을 제어하기 위한 말끊기가 없을 경우, 다시 90년대 시사방송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