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던 중, 시어머니께 좋은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정보만 얻으려는 마음이었어요. 이 정도는 흔한 가족 대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자신이 원장님을 직접 안다며 연줄로 '직접 넣어주겠다'고 하셨어요. 선의가 분명했지만, 상황이 다르게 펼쳐졌어요. 내 입장은 아이를 맡길 환경을 충분히 살펴본 뒤에 결정하고 싶었거든요. 원의 분위기, 교사, 교육 철학, 위생 상태 등을 직접 확인한 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그 이후가 문제였어요. 시어머니가 서운해 보이더니 남편에게까지 연락이 갔어요. 남편은 "어머니가 도와주려는데 왜 거절하냐, 그냥 어머니 말대로 하면 안 되냐"고 했어요. 심지어 '예민하다'는 말까지 들었어요. 나는 아이의 부모인데, 내 아이의 유치원을 내가 선택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닐 텐데요.
중요한 건 이게 단순한 '도움'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누가 결정하느냐, 다시 말해 양육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아이의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건 일상적인 양육 결정 중 하나인데, 이 순간 부모가 직접 주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양육 전반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져요. 유치원 입원 같은 중요한 결정을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 '끝나버린' 상태로 받아들이는 건, 결국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 '설득당하는 입장'에 머물게 된다는 뜻이거든요.
연줄을 통해 들어가면 이후에 현실적인 불편함도 생길 수 있어요. 원장님과의 관계가 시어머니를 거쳐 연결되어 있으면, 나중에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원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할까요? 문제를 제기하기가 심리적으로 훨씬 어려워져요. '시어머니가 추천해주신 곳인데'라는 의식이 생기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남편이 해야 할 역할은 아내를 설득해서 시어머니 뜻대로 따르게 하는 게 아니었어요. 대신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의 교육 결정에 주도권을 갖는 게 당연하다는 점을 시어머니께 전해주는 게 중보자의 역할이었어요. 가족 내 결정 구조에서 남편은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걸 조정자의 입장에서 시어머니께 설명해야 했던 거죠.
'예민하다'는 평가는 실제 갈등의 본질을 흐린다고 봐요. 부모, 특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양육자가 자녀의 교육을 직접 결정하겠다는 건 예민함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 행사거든요. 그 당연한 주도권을 '예민함'이라는 프레임으로 재단해버리면, 실제 갈등의 구조는 감춰지고 '그 사람이 좀 민감해'라는 일방적 낙인만 남게 돼요. 그렇게 되면 정작 중요한 대화는 안 되고, 점점 더 관계만 어색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 원문 발췌
갑자기 본인이 직접 원장님을 아신다는 거예요 그분 통해서 넣어주겠다고 하시는데 저는 제가 직접 방문해서 보고 결정하고 싶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